현대 창업주 · 소 판 돈을 쥐고 도망친 소년에서, 길과 배와 차를 지은 거인으로 — 그리고 정직하게 본 그 시대Founder of Hyundai · From a runaway with a sold cow’s coins to the giant who built roads, ships, and cars — and an honest look at his era現代創業者 · 牛を売った金を握って逃げた少年から、道と船と車を造った巨人へ — そしてその時代を正直に现代集团创始人 · 从攥着卖牛之钱逃走的少年,到建起路·船·车的巨人 — 并诚实审视其时代
정주영Chung Ju-yung鄭周永郑周永
소 판 돈을 쥐고 도망친 소년에서, 길·배·차를 지은 거인으로 — 그리고 정직하게 본 그 시대From a runaway with a sold cow’s coins to the giant who built roads, ships, and cars — and an honest look at his era牛を売った金を握って逃げた少年から、道と船と車を造った巨人へ — そしてその時代を正直に从攥着卖牛之钱逃走的少年,到建起路·船·车的巨人 — 并诚实审视其时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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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 한강의 기적, 그 사람Prologue · The Man Behind the Miracleプロローグ · 漢江の奇跡、その人序 · 汉江奇迹背后的人
그 사람The Manその人其人
한강의 기적, 그 한가운데At the Heart of the Miracle on the Han漢江の奇跡、その中心に汉江奇迹的正中央
“이봐, 해봤어?”“Did you even try?”「なあ、やってみたのか?」“喂,你试过了吗?”
- 정주영은 전후 한국의 길·배·차를 지어 올린 현대그룹의 창업주다Chung Ju-yung founded the Hyundai group, which built the roads, ships, and cars of postwar Korea鄭周永は戦後韓国の道・船・車を造り上げた現代グループの創業者だ郑周永是现代集团的创始人,其集团建起了战后韩国的路·船·车
- 가난한 농가의 가출 소년이 ‘한강의 기적’의 인간적 얼굴이 되었다A runaway boy from a poor farm became the human face of the “Miracle on the Han River”貧しい農家の家出少年が「漢江の奇跡」の人間的な顔になった一个贫农家的出走少年,成了“汉江奇迹”的人性面孔
- 그의 좌우명 “이봐, 해봤어?”는 ‘하면 된다’ 시대정신의 압축이었다His motto “Did you even try?” distilled the “can-do” spirit of the age彼の座右の銘「なあ、やってみたのか?」は「やればできる」時代精神の凝縮だった他的座右铭“喂,你试过了吗?”浓缩了那个“事在人为”的时代精神
해설Note解説注解다만 이 기적은 박정희 시대의 국가주도 개발체제(관치금융·보호시장) 위에서 이뤄졌다 — 이 데크는 그 맥락을 함께 본다.But this miracle rode on Park Chung-hee’s state-directed development (state-steered credit, protected markets) — this deck keeps that context in view.ただしこの奇跡は朴正煕時代の国家主導の開発体制(官治金融・保護市場)の上で成った — このデッキはその文脈も見る。但这一奇迹是在朴正熙时代国家主导的开发体制(官治金融·保护市场)之上实现的 — 本演示一并审视这一背景。
“길이 없으면, 길을 찾아라. 찾아도 없으면, 길을 닦아라.”“If there is no road, find one; if you still cannot, build one.”「道がなければ探せ。探してもなければ、道を切り開け。」“无路,便去找路;找不到,便去开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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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생애A Whole Life一生一生
쌀가게에서 조선소까지From a Rice Shop to a Shipyard米屋から造船所まで从米店到船坞
느슨한 지도The map aheadこれからの地図前路的地图
- 가출 소년 → 쌀가게 주인 → 건설 → 조선 → 자동차 → 바다와 사막의 대역사Runaway → rice-shop owner → construction → shipbuilding → cars → great works of sea and desert家出少年 → 米屋の主人 → 建設 → 造船 → 自動車 → 海と砂漠の大工事出走少年 → 米店老板 → 建筑 → 造船 → 汽车 → 海与沙漠的大工程
- 그리고 여든셋에 소떼를 몰고 고향 북녘으로 돌아가는 마지막 장면And, at 83, a final scene: leading a herd of cattle back to his northern homelandそして83歳、牛の群れを率いて故郷の北へ帰る最後の場面及至83岁,率牛群返回北方故乡的最后一幕
- 이 데크는 그 여정을 감동적으로, 그러나 정직하게 따라간다This deck follows that journey with feeling — but honestlyこのデッキはその旅を感動的に、しかし正直に辿る本演示满怀感动、却诚实地追随这段旅程
해설Note解説注解회사의 실체를 구분해 읽는다 — 1946년 ‘현대자동차공업사’(정비소)는 1967년 ‘현대자동차’(자동차 회사)와 다르다.We keep the entities distinct — the 1946 “Hyundai Auto Industrial” (a repair shop) is not the 1967 “Hyundai Motor” (the carmaker).会社の実体を区別して読む — 1946年「現代自動車工業社」(整備所)は1967年「現代自動車」(自動車会社)と違う。我们区分实体来读 — 1946年的“现代汽车工业社”(修理厂)不同于1967年的“现代汽车”(车企)。
“한 사람의 일생이, 한 나라의 산업사와 겹쳐졌다.”“One man’s life overlapped with a nation’s industrial history.”「一人の一生が、一国の産業史と重なった。」“一个人的一生,与一个国家的工业史重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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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법How to Read It読み方读法
영웅담과 사실을 가르며Parting Heroism from Fact英雄譚と事実を分けて区分英雄叙事与事实
전설과 검증Legend and verified伝説と検証传说与实证
- 소 판 돈, 500원짜리 거북선, 가라앉힌 유조선, 소 1,001마리 — 유명한 장면일수록 각색이 얹혀 있다The cow money, the 500-won turtle ship, the sunken tanker, the 1,001 cattle — the more famous the scene, the more embellishment牛を売った金、500ウォンの亀甲船、沈めたタンカー、牛1,001頭 — 有名な場面ほど脚色が乗る卖牛的钱、500元的龟船、沉下的油轮、1,001头牛 — 越著名的场面,附加的修饰越多
- 그래서 검증된 핵심을 먼저 말하고, 덧붙은 윤색은 그 자리에서 표시한다So we state the verified core first, and flag the added polish where it occursだから検証された核心をまず述べ、加えられた潤色をその場で示す故先陈述已核实的核心,再在原处标出添加的润色
- 생생한 대사와 정확한 숫자의 상당수는 그의 자서전에서 왔음을 기억한다And we remember that much vivid dialogue and exact figures come from his own memoirs生き生きした台詞や正確な数字の多くが彼の自伝から来たことを覚えておく并记得许多生动对白与精确数字,皆出自他本人的自传
해설Note解説注解감동적이되 성인화하지 않는다 — 재벌·권위주의기·노동 문제도 같은 호흡으로 짚는다.Inspiring but not saintly — the chaebol, the authoritarian era, and labor issues are noted in the same breath.感動的だが聖人化しない — 財閥・権威主義期・労働問題も同じ息で触れる。感人却不封圣 — 财阀、威权时期与劳工问题也一并道及。
“존경은 미화가 아니다 — 있는 그대로 볼 때, 사람은 더 커진다.”“Respect is not embellishment — seen as he was, the man grows larger.”「尊敬は美化でない — ありのまま見るとき、人はより大きくなる。」“敬重不是美化 — 如实来看,人反而更显伟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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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부 · 가출 소년Part 1 · The Runaway第1部 · 家出少年第一部 · 出走的少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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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출 소년The Runaway家出少年出走的少年
제1부 · 북녘 농가에서 서울의 쌀가게까지Part 1 · From a northern farm to a Seoul rice shop第1部 · 北の農家からソウルの米屋まで第一部 · 从北方农家到首尔米店
제1부 · 가출 소년Part 1 · The Runaway第1部 · 家出少年第一部 · 出走的少年
1915191519151915
가난한 북녘 농가의 장남Eldest Son of a Poor Northern Farm貧しい北の農家の長男北方贫农家的长子
강원도 통천, 지금은 북녘Tongchon, Kangwon — now in the North江原道通川、今は北江原道通川,如今在北方
- 정주영은 1915년 강원도 통천군의 가난한 소작 농가에서 8남매의 맏이로 태어났다Chung Ju-yung was born in 1915 in Tongchon, Kangwon, the eldest of eight in a poor tenant-farming family鄭周永は1915年、江原道通川郡の貧しい小作農家に8人兄妹の長男として生まれた郑周永1915年生于江原道通川郡的贫苦佃农之家,为八兄妹之长
- 그 마을은 지금 휴전선 북쪽에 있어, 그는 평생 고향을 잃은 실향민이 되었다That village now lies north of the DMZ, so he became a lifelong displaced northernerその村は今休戦ラインの北にあり、彼は生涯故郷を失った失郷民となった那村庄如今在停战线以北,他因此终生成为失去故乡的离乡人
- 가난과 흙일에서 벗어나려는 갈망이, 훗날의 모든 것을 밀어붙인 첫 동력이었다The longing to escape poverty and farm labor was the first engine of everything that followed貧しさと土仕事から抜け出そうとする渇望が、後の全てを押し進めた最初の力だった摆脱贫穷与农活的渴望,是此后一切的第一动力
해설Note解説注解고향이 북녘이라는 사실은, 훗날 여든셋의 소떼 방북이라는 마지막 장면의 정서적 뿌리가 된다(§에필로그).That his home was in the North becomes the emotional root of his final scene — the cattle drive at 83 (Epilogue).故郷が北であることは、後の83歳の牛の群れ訪北という最後の場面の情緒的な根になる(エピローグ)。故乡在北方这一事实,成了他83岁率牛群访朝这一终幕的情感之根(见尾声)。
“가난은 그에게 원한이 아니라, 벗어나야 할 과제였다.”“Poverty was to him not a grievance, but a task to escape.”「貧しさは彼にとって恨みでなく、抜け出すべき課題だった。」“贫穷于他不是怨恨,而是要挣脱的课题。”

제1부 · 가출 소년Part 1 · The Runaway第1部 · 家出少年第一部 · 出走的少年
배움Schooling学び求学
그가 받은 교육의 전부The Whole of His Schooling彼が受けた教育の全て他所受教育的全部
소학교와 천자문A primary school and the classics小学校と千字文小学与千字文
- 그의 정규 학력은 1930년 송전소학교 졸업이 전부였다His entire formal education was graduating from Songjeon Primary School in 1930彼の正規の学歴は1930年の松田小学校卒業が全てだった他的全部正规学历,就是1930年从松田小学毕业
- 거기에 할아버지에게 배운 한문(천자문) 정도가 더해졌을 뿐이다To that was added only the Chinese classics he learned from his grandfatherそこに祖父から学んだ漢文(千字文)ほどが加わっただけだ此外仅添了从祖父处习得的汉文(千字文)
- 중등·대학 교육이 없었다는 사실이, 그의 ‘맨손 자수성가’ 이미지의 핵심이 되었다That he had no secondary or university education became central to his “self-made” image中等・大学教育がなかった事実が、彼の「素手の立身」像の核心になった没有中学与大学教育这一事实,成了他“白手起家”形象的核心
해설Note解説注解학벌 없이 이룬 성취는 그의 서사에서 늘 강조되지만, 그 성취가 시대의 구조적 뒷받침 위에 섰다는 점도 함께 본다.His achievement without credentials is always stressed in his story — but we also see that it stood on the era’s structural support.学歴なしの達成は彼の物語で常に強調されるが、その達成が時代の構造的支えの上に立ったことも見る。无学历而成就常在其叙事中被强调,但我们也看到,那成就立于时代结构性支撑之上。
“그의 대학은 교실이 아니라, 현장이었다.”“His university was not a classroom, but the worksite.”「彼の大学は教室でなく、現場だった。」“他的大学不是课堂,而是工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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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번의 가출Four Escapes四度の家出四次出走
네 번 도망치고, 네 번 붙들려 오다Four Times He Ran, Four Times Brought Back四度逃げ、四度連れ戻される四次逃走,四次被带回
1931년 무렵Around 19311931年頃约1931年
- 열대여섯 살 무렵, 그는 흙일이 싫어 도시로 도망쳤다 — 흔히 네 번으로 전한다In his mid-teens he fled the farm for the city — the story standardizes on four attempts十五、六歳の頃、土仕事が嫌で都会へ逃げた — よく四度と伝わる十五六岁时,他厌恶农活而逃向城市 — 常传为四次
- 초기의 도망은 대개 북쪽 노동·건설 현장을 향했고, 그때마다 아버지가 찾아와 데려왔다The early flights headed for northern labor and construction sites, and each time his father came and fetched him初期の逃亡は主に北の労働・建設現場へ向かい、その都度父が来て連れ戻した早期出走多奔向北方的劳工与工地,每次父亲都来寻回
- 붙들려 돌아와도 그는 멈추지 않았다 — 그 집요함이 평생의 성격이 되었다Brought home, he did not stop — that tenacity became the character of his whole life連れ戻されても止めなかった — その執拗さが生涯の性格になった即便被带回也不罢休 — 那份执拗成了他一生的性格
해설Note解説注解가출 횟수·경로의 세부는 판본마다 조금씩 다르다 — 큰 줄기(거듭된 가출과 집요함)는 잘 확인된다.Details of the number and routes vary by telling — the broad arc (repeated escapes, tenacity) is well attested.家出の回数・経路の細部は版により少し異なる — 大筋(度重なる家出と執拗さ)はよく確認される。出走次数与路线的细节各说略异 — 但大脉络(屡次出走与执拗)确凿。
“그는 붙들려 오는 것을 실패가 아니라, 다음 시도의 예고로 여겼다.”“Being brought back he treated not as failure, but as prelude to the next attempt.”「連れ戻されるのを失敗でなく、次の挑戦の予告と考えた。」“被带回,他视为下一次尝试的前奏,而非失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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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 판 돈The Cow Money牛を売った金卖牛的钱
소 판 돈을 쥐고 서울로To Seoul with a Sold Cow’s Coins牛を売った金を握ってソウルへ攥着卖牛的钱赴首尔
훗날 소떼로 갚을 빚A debt he would repay with cattle後に牛の群れで返す借り日后以牛群偿还的债
- 한 번의 가출에서 그는 아버지가 소를 판 돈 약 70원을 들고 서울로 달아났다On one escape he ran to Seoul carrying about 70 won from his father’s sale of a cowある家出で彼は父が牛を売った金約70ウォンを持ってソウルへ逃げた某次出走,他带着父亲卖牛所得约70元逃往首尔
- 그 돈으로 경성의 부기 학원에 등록했다가 다시 붙들려 왔다With it he enrolled at a bookkeeping academy in Seoul, only to be found and brought backその金で京城の簿記学院に登録したが、また見つかり連れ戻された他以那笔钱在京城的簿记学院注册,却又被寻回带走
- 훗날 여든셋에 소 천 마리로 되갚게 되는, 그 ‘소 한 마리’의 빚이 여기서 생겼다Here began the debt of “one cow” he would repay, at 83, with a thousand後に83歳で牛千頭で返すことになる、その「牛一頭」の借りがここで生まれた日后83岁以千头牛偿还的那“一头牛”之债,正始于此
해설Note解説注解[검증된 핵심] 소 판 돈으로 가출한 일은 그 자신도 여러 번 밝혔다. [각색] ‘열여섯에 홀로 소를 팔았다’거나 마지막 성공한 가출로 못 박는 버전은 윤색이다.[Verified] The cow-money flight is one he told himself repeatedly. [Embellished] Versions pinning it to “selling the family’s only cow at 16” or to the final successful escape are polish.[検証済] 牛を売った金での家出は本人も度々語った。[脚色] 「16歳で一人で牛を売った」や最後の成功した家出に固定する版は潤色だ。[已核实] 以卖牛之钱出走,他本人屡次自述。[已润色] 将其定为“16岁独自卖牛”或最后成功那次出走的版本,属修饰。
“한 마리 소의 빚이, 반세기를 건너 천 마리로 돌아왔다.”“The debt of one cow came back, half a century later, as a thousand.”「一頭の牛の借りが、半世紀を越えて千頭で返ってきた。」“一头牛之债,跨越半世纪,化作千头归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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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가게The Rice Shop米屋米店
배달원에서 주인으로From Delivery Boy to Owner配達員から主人へ从送货郎到店主
1934 → 19381934 → 19381934 → 19381934 → 1938
- 1933년 인천 부두 막노동을 거쳐 서울에 자리 잡고, 이듬해 복흥상회라는 쌀가게 배달원이 되었다After dock labor in Incheon in 1933 he settled in Seoul and, the next year, became a delivery boy at the Bokheung-sang rice store1933年仁川の埠頭労働を経てソウルに落ち着き、翌年、福興商会という米屋の配達員になった1933年在仁川码头做苦力后于首尔落脚,次年成为福兴商会米店的送货郎
- 성실함이 눈에 띄어 몇 달 만에 장부를 맡았고, 주인의 신임을 얻었다His diligence stood out; within months he was keeping the books and had won the owner’s trust誠実さが目立ち、数か月で帳簿を任され、主人の信頼を得た勤恳出众,数月便掌管账簿,赢得店主信任
- 1938년, 주인은 가게를 그에게 넘겼고 그는 그것을 경일상회로 이름 바꿨다 — 첫 자기 사업이었다In 1938 the owner handed him the shop, which he renamed Gyeongil-sanghoe — his first own business1938年、主人は店を彼に譲り、彼は経一商会と改名した — 初の自分の事業だった1938年,店主将店交予他,他改名为京一商会 — 是他第一桩自家生意
해설Note解説注解성실이 자본이 되고 신뢰가 사업이 되는 이 패턴은, 훗날 고령교와 조선소에서도 되풀이된다.This pattern — diligence becoming capital, trust becoming a business — recurs later at the Koryong bridge and the shipyard.誠実が資本になり信頼が事業になるこのパターンは、後の高霊橋や造船所でも繰り返される。勤恳化为资本、信任化为生意的这一模式,日后在高灵桥与船坞再度重演。
“그의 첫 자본은 돈이 아니라, 남이 준 신뢰였다.”“His first capital was not money, but the trust others gave him.”「彼の最初の資本は金でなく、人が与えた信頼だった。」“他的第一笔资本不是钱,而是他人给予的信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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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의 벽Colonial Walls植民地の壁殖民之壁
불타고, 다시 세우고, 빼앗기다It Burned, Was Rebuilt, and Was Taken焼け、建て直し、奪われる烧毁、重建、被夺
1940 → 19431940 → 19431940 → 19431940 → 1943
- 전시 배급제로 쌀 장사가 막히자(1940), 그는 아현동에 아도서비스라는 자동차 정비소를 열었다When wartime rationing shut down the rice trade (1940), he opened the Ado Service auto-repair shop in Ahyeon-dong戦時配給制で米商売が塞がると(1940)、彼は阿峴洞にアドサービスという自動車整備所を開いた战时配给使米业受阻(1940),他在阿岘洞开了名为“阿道服务”的汽车修理厂
- 문을 열자마자 불이 났지만, 빌린 돈으로 다시 세워 키웠다A fire broke out almost as soon as it opened, but he rebuilt it with borrowed money and grew it開いた途端火事になったが、借りた金で建て直し育てた刚开张便遭火灾,他却以借来的钱重建并壮大
- 그러나 1943년, 일제의 전시 기업 통합령으로 정비소를 강제로 빼앗겼다But in 1943, Japanese wartime enterprise consolidation forced him to surrender the shopだが1943年、日帝の戦時企業統合令で整備所を強制的に奪われた但1943年,日本殖民当局的战时企业整合令强夺了这修理厂
해설Note解説注解1940년의 화재와 1943년의 강제 통합은 별개의 사건이다 — 자주 뒤섞여 전해지므로 구분해 둔다.The 1940 fire and the 1943 forced merger are separate events — often conflated, so we keep them distinct.1940年の火災と1943年の強制統合は別の出来事だ — よく混同されるので区別しておく。1940年的火灾与1943年的强制合并是两回事 — 常被混淆,故加以区分。
“식민지의 청년에게는, 노력만으로 지킬 수 없는 것들이 있었다.”“For a young man under colonial rule, some things could not be kept by effort alone.”「植民地の青年には、努力だけでは守れないものがあった。」“对殖民地的青年而言,有些东西并非努力便能守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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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부 · 짓는 사람Part 2 · The Builder第2部 · 造る人第二部 · 建造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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짓는 사람The Builder造る人建造者
제2부 · 다리, 고속도로, 그리고 “해봤어?”Part 2 · Bridges, an expressway, and “Did you try?”第2部 · 橋、高速道路、そして「やってみたのか?」第二部 · 桥、高速公路,与“试过了吗?”
제2부 · 짓는 사람Part 2 · The Builder第2部 · 造る人第二部 · 建造者
창업Founding創業创业
‘현대’라는 이름을 세우다Raising the Name “Hyundai”「現代」という名を立てる立起“现代”之名
1946 → 1947 → 19501946 → 1947 → 19501946 → 1947 → 19501946 → 1947 → 1950
- 해방 후 1946년 현대자동차공업사(정비소)를 열며 ‘현대’(=모던)라는 이름을 처음 썼다After liberation, in 1946 he opened Hyundai Auto Industrial (a repair shop), first using the name “Hyundai” — meaning “modern”解放後1946年、現代自動車工業社(整備所)を開き「現代=モダン」という名を初めて使った光复后1946年,他开设现代汽车工业社(修理厂),首次使用“现代(modern)”之名
- 1947년 현대토건사를 세웠고, 1950년 둘을 합쳐 현대건설을 출범시켰다In 1947 he founded Hyundai Civil Works, and in 1950 merged the two into Hyundai Construction1947年現代土建社を設立し、1950年に両者を合わせ現代建設を発足させた1947年创立现代土建社,1950年将二者合并成立现代建设
- 현대건설은 훗날 거대 그룹의 모태가 된다Hyundai Construction would become the seedbed of a vast group現代建設は後に巨大グループの母体になる现代建设日后成为庞大集团的母体
해설Note解説注解1946년 정비소와 1967년 현대자동차(자동차 회사)를 혼동하지 말 것 — 이름은 같아도 실체가 다르다.Do not confuse the 1946 repair shop with the 1967 Hyundai Motor (the carmaker) — same name, different entities.1946年の整備所と1967年の現代自動車(自動車会社)を混同しないこと — 名は同じでも実体が違う。勿混淆1946年的修理厂与1967年的现代汽车(车企)— 同名而实体不同。
“그는 이름부터 시대를 향해 지었다 — ‘현대’.”“He built even the name toward the age — ‘Hyundai,’ the modern.”「彼は名からして時代へ向けて建てた — 『現代』。」“他连名字都朝着时代而建 — ‘现代’。”

제2부 · 짓는 사람Part 2 · The Builder第2部 · 造る人第二部 · 建造者
전후 발판Postwar Footing戦後の足場战后立足
폐허 위에 놓인 발판A Footing Laid on Ruins廃墟の上の足場废墟之上的立足点
미군과 정부 공사US-military and government works米軍と政府工事美军与政府工程
- 현대건설은 6·25 전후의 복구 공사, 특히 미 8군과 정부 발주 공사로 발판을 다졌다Hyundai Construction found its footing in postwar reconstruction, especially US 8th Army and government contracts現代建設は朝鮮戦争前後の復旧工事、特に米第8軍と政府発注工事で足場を固めた现代建设在朝鲜战争前后的复建工程、尤其美第八军与政府工程中站稳脚跟
- 이 시기의 수주에는 인맥과 정보의 도움도 있었다 — 순전한 맨손만은 아니었다Winning that work owed something to connections and information — it was not pure bootstrapsこの時期の受注には人脈や情報の助けもあった — 純粋な素手だけではなかった此期承接工程也得益于人脉与信息 — 并非纯粹的白手
- 그러나 남들이 꺼리는 공사를 떠맡아 해내는 실행력이, 그 발판을 반석으로 바꿨다Yet his execution — taking on jobs others shunned and finishing them — turned that footing into bedrockだが他人が嫌う工事を引き受け成し遂げる実行力が、その足場を盤石に変えた但他承接他人畏难之工程并做成的执行力,将立足点化为磐石
해설Note解説注解‘순수 자수성가’ 신화는 과장이다 — 시대·인맥·국가발주라는 조건과 개인의 실행력을 함께 본다.The “pure self-made” myth is overstated — we see both the conditions (era, connections, state contracts) and personal execution.「純粋な自수성가」神話は誇張だ — 時代・人脈・国家発注という条件と個人の実行力を共に見る。“纯粹白手起家”的神话被夸大 — 我们同时审视条件(时代·人脉·国家发包)与个人执行力。
“기회는 인맥이 열어 주었지만, 그 기회를 지킨 것은 실행력이었다.”“Connections opened the chance, but execution kept it.”「機会は人脈が開いたが、その機会を守ったのは実行力だった。」“机会由人脉打开,守住机会的却是执行力。”

제2부 · 짓는 사람Part 2 · The Builder第2部 · 造る人第二部 · 建造者
고령교Koryong Bridge高霊橋高灵桥
망할 뻔한 다리, 지켜 낸 신용A Bridge That Nearly Ruined Him, a Trust He Kept潰れかけた橋、守った信用几乎倾家的桥,守住的信用
1953–19551953–19551953–19551953–1955
- 낙동강 고령교 복구 공사(1953년 계약)는 전후 초인플레이션으로 공사비가 계약금을 훌쩍 넘겼다The Koryong Bridge project (contracted 1953) saw costs far exceed the fixed price amid postwar hyperinflation洛東江の高霊橋復旧工事(1953年契約)は戦後の超インフレで工事費が契約金を大きく超えた洛东江高灵桥复建工程(1953年签约)因战后恶性通胀,造价远超合同价
- 약 7천만 환의 손실로 현대는 파산 직전까지 몰렸다A loss of around 70 million hwan pushed Hyundai to the brink of bankruptcy約7千万ファンの損失で現代は破産寸前まで追い込まれた约7000万圜的亏损,把现代逼到破产边缘
- 그러나 그는 가족 재산까지 팔아 계약을 끝까지 이행했다 — 그 신용이 다음 일감을 불렀다Still, he honored the contract to the end, even selling family assets — and that trust brought the next workだが彼は家族の財産まで売って契約を最後まで履行した — その信用が次の仕事を呼んだ但他甚至变卖家产,将合同履行到底 — 那份信用招来了下一批工程
해설Note解説注解손실액은 자료마다 다소 다르다(약 7천만 환대) — 핵심은 ‘손해를 감수하고 계약을 지켰다’는 사실이다.The loss figure varies by source (around 70 million hwan) — the core is that he honored the contract at a loss.損失額は資料により多少異なる(約7千万ファン台) — 核心は「損を覚悟で契約を守った」ことだ。亏损数额各资料略异(约7000万圜上下)— 核心是“甘愿受损、守住合同”。
“손해를 보고 신용을 산 것이, 그의 가장 남는 장사였다.”“Taking the loss to buy trust was his most profitable deal.”「損をして信用を買ったのが、彼の最も得な商売だった。」“亏本买下信用,是他最赚的一笔买卖。”

제2부 · 짓는 사람Part 2 · The Builder第2部 · 造る人第二部 · 建造者
첫 해외First Overseas初の海外首次海外
열대의 정글에 낸 첫 길A First Road Cut in a Tropical Jungle熱帯のジャングルに拓いた初の道在热带丛林中开出的第一条路
태국, 1965년Thailand, 1965タイ、1965年泰国,1965年
- 1965년 태국의 파타니–나라티왓 고속도로는 한국 기업의 첫 해외 건설 수주였다The 1965 Pattani–Narathiwat Highway in Thailand was the first overseas construction contract by a Korean firm1965年タイのパタニ–ナラティワート高速道路は韓国企業初の海外建設受注だった1965年泰国的北大年–那拉提瓦公路,是韩国企业首个海外建设订单
- 재정적으로는 손해를 봤다고 전하지만, 국제 규격과 장비·기술을 배우는 값진 수업이었다Financially it reportedly lost money, but it was a priceless lesson in international specs, equipment, and technique財政的には損したと伝わるが、国際規格と機材・技術を学ぶ貴重な授業だった据传财务上亏损,却是学习国际规格与设备·技术的宝贵一课
- 이 값비싼 수업이, 훗날 중동과 세계로 나가는 문을 열었다That costly lesson opened the door to the Middle East and the wider worldこの高くついた授業が、後の中東と世界への扉を開いた这堂昂贵的课,为日后走向中东与世界打开了门
해설Note解説注解첫 해외 진출은 성공담이라기보다 ‘값비싼 학습’이었다 — 그 배움이 다음 도약의 밑천이 되었다.The first overseas venture was less a triumph than a “costly education” — that learning funded the next leap.初の海外進出は成功談というより「高い学習」だった — その学びが次の跳躍の元手になった。首次海外拓展与其说是成功,不如说是“昂贵的学习”— 那份学习成了下一跃的本钱。
“그는 손해 보는 공사에서, 돈 대신 미래를 벌었다.”“On a money-losing job, he earned the future instead of cash.”「彼は損する工事で、金の代わりに未来を稼いだ。」“在赔钱的工程里,他赚到的不是钱,而是未来。”

제2부 · 짓는 사람Part 2 · The Builder第2部 · 造る人第二部 · 建造者
경부고속도로The Expressway京釜高速道路京釜高速
서울에서 부산까지, 2년 5개월Seoul to Busan in 2 Years and 5 Monthsソウルから釜山まで、2年5か月首尔到釜山,2年5个月
1968–19701968–19701968–19701968–1970
- 약 428km의 경부고속도로가 1968년 착공해 1970년에 개통했다 — 놀라운 속도였다The ~428 km Seoul–Busan Expressway broke ground in 1968 and opened in 1970 — an astonishing pace約428kmの京釜高速道路が1968年着工、1970年に開通した — 驚くべき速さだった约428公里的京釜高速公路1968年动工、1970年通车 — 速度惊人
- 박정희 정부의 상징 사업이었고, 현대건설이 가장 큰 구간을 맡았다A signature project of the Park Chung-hee government, with Hyundai Construction building the largest share朴正煕政権の象徴事業で、現代建設が最大区間を担った这是朴正熙政府的标志工程,现代建设承担了最大区段
- km당 공사비가 세계에서 손꼽히게 낮아, 속도와 비용 모두에서 신화가 되었다Its cost per kilometer was among the lowest anywhere, making a legend of both its speed and its pricekm当たり工事費が世界屈指に低く、速度と費用の両方で神話になった每公里造价为世界最低之列,速度与成本双双成为传奇
해설Note解説注解다음 장에서 그 속도의 대가(공식 사망 77명)를 함께 본다. 신화는 인명의 대가 위에서 정직해야 한다.The next slide looks at the cost of that speed — 77 official deaths. A legend must be honest about the human price.次章でその速度の代価 — 公式死者77人 — を共に見る。神話は人命の代価の上で正直でなければならない。下一页一并审视那速度的代价 — 官方死亡77人。传奇须在人命代价面前诚实。
“한 나라가 압축 성장하던 속도가, 이 도로 위에 새겨졌다.”“The speed at which a nation compressed its growth was carved into this road.”「一国が圧縮成長した速度が、この道路に刻まれた。」“一个国家压缩式增长的速度,镌刻在这条路上。”

제2부 · 짓는 사람Part 2 · The Builder第2部 · 造る人第二部 · 建造者
속도의 대가The Cost of Speed速度の代価速度的代价
77명이라는 정직한 숫자The Honest Number: 7777人という正直な数77人这个诚实的数字
당재터널의 그늘The shadow of the Dangjae Tunnel唐材トンネルの影唐材隧道的阴影
- 경부고속도로 공사에서 공식 집계로만 77명의 노동자가 목숨을 잃었다On the expressway’s construction, 77 workers died by official count alone京釜高速道路の工事で公式集計だけでも77人の労働者が命を落とした京釜高速工程中,仅官方统计便有77名工人罹难
- 특히 험한 당재터널 구간이 가장 많은 희생을 냈다The treacherous Dangjae Tunnel section took the heaviest toll特に険しい唐材トンネル区間が最も多くの犠牲を出した尤以险峻的唐材隧道段伤亡最重
- 속도와 저비용의 신화 이면에는, 임시 노동자를 포함하면 더 컸을 인명의 대가가 있었다Behind the legend of speed and low cost lay a human toll that was likely larger still, counting casual laborers速度と低コストの神話の裏には、臨時労働者を含めればより大きかった人命の代価があった速度与低成本神话的背后,若计入临时工,人命代价恐怕更大
해설Note解説注解성취를 기리되 그 대가를 지우지 않는다 — 이것이 이 데크가 인물을 존중하는 방식이다.We honor the achievement without erasing its cost — this is how this deck respects the man.達成を称えつつその代価を消さない — これがこのデッキが人物を敬う仕方だ。颂扬成就而不抹去其代价 — 这便是本演示敬重人物的方式。
“빨리 놓인 길일수록, 그 아래 잠든 이름들을 기억해야 한다.”“The faster a road was laid, the more we must remember the names asleep beneath it.”「速く敷かれた道ほど、その下に眠る名を記憶せねばならない。」“路铺得越快,越须铭记其下长眠的名字。”

제2부 · 짓는 사람Part 2 · The Builder第2部 · 造る人第二部 · 建造者
좌우명The Credo座右の銘座右铭
“이봐, 해봤어?”“Did You Even Try?”「なあ、やってみたのか?」“喂,你试过了吗?”
하면 된다는 밀어붙임The push of “it can be done”やればできるという押し“事在人为”的推力
- 불가능하다는 보고를 받으면 그는 되물었다 — “이봐, 해봤어?”Told something was impossible, he would ask back — “Hey, did you even try?”不可能という報告を受けると彼は問い返した — 「なあ、やってみたのか?」每当接到“不可能”的报告,他便反问 — “喂,你试过了吗?”
- 이 한마디가 현대의 밀어붙이는 경영 문화를 상징하게 되었다That one line came to symbolize Hyundai’s push-through management cultureこの一言が現代の押し進める経営文化を象徴するようになった这一句,成了现代“推着干”的经营文化的象征
- 그것은 시대를 앞으로 민 힘이자, 동시에 사람을 몰아붙인 힘이기도 했다It was a force that pushed an era forward — and also one that drove people hardそれは時代を前へ押した力であり、同時に人を追い立てた力でもあった那既是推动时代前进之力,也是驱赶人们之力
해설Note解説注解‘하면 된다’ 정신은 성취의 동력이자, 장시간 노동과 무리한 공사 기간의 그늘도 함께 지녔다.The “can-do” spirit drove achievement — and also carried the shadow of long hours and punishing deadlines.「やればできる」精神は達成の動力であり、長時間労働や無理な工期の影も併せ持った。“事在人为”精神是成就的动力,也伴随长时劳动与苛刻工期的阴影。
“해봤느냐는 물음은 격려이자, 때로는 명령이었다.”“‘Did you try?’ was encouragement — and, at times, an order.”「やってみたのかという問いは激励であり、時には命令だった。」“‘试过了吗’之问,是激励,有时也是命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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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부 · 빈 백사장의 배Part 3 · Ships from a Bare Beach第3部 · 砂浜からの船第三部 · 荒滩上的巨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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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백사장의 배Ships from a Bare Beach砂浜からの船荒滩上的巨轮
제3부 · 없는 조선소로 배를 팔고, 첫 차를 만들다Part 3 · Selling ships from a shipyard that didn’t exist, and making the first car第3部 · 無い造船所で船を売り、初の車を造る第三部 · 用不存在的船坞卖船,并造出第一辆车
제3부 · 빈 백사장의 배Part 3 · Ships from a Bare Beach第3部 · 砂浜からの船第三部 · 荒滩上的巨轮
불가능한 설득Impossible Pitch不可能な説得不可能的游说
500원짜리 지폐 속 거북선The Turtle Ship on a 500-Won Note500ウォン紙幣の中の亀甲船500元纸币上的龟船
1971년19711971年1971年
- 조선소도 없고 배를 만들어 본 적도 없던 1971년, 그는 영국에서 조선소 자금을 구하려 했다In 1971, with no shipyard and no ship ever built, he sought shipyard financing in Britain造船所もなく船を造ったこともなかった1971年、彼は英国で造船所の資金を求めた1971年,既无船坞也从未造过船的他,赴英国寻求建船坞的资金
- 의심하는 상대에게 그는 500원짜리 지폐 속 거북선을 내밀며, 한국이 16세기에 철갑선을 만들었다고 설득했다To a doubting partner he produced a 500-won note bearing the turtle ship, arguing Korea had built ironclads in the 16th century疑う相手に彼は500ウォン紙幣の亀甲船を差し出し、韓国が16世紀に鉄甲船を造ったと説得した面对存疑的对方,他递出印有龟船的500元纸币,力陈韩国在16世纪便造过铁甲船
- 그 설득이 자금 지원 추천으로 이어졌다 — 다만 실제 주문을 먼저 따온다는 조건이었다That pitch led to a recommendation for financing — but conditional on landing real orders firstその説得が資金支援の推薦につながった — ただし実際の注文を先に取ることが条件だった那番游说带来了资金支持的推荐 — 但以先拿到真实订单为条件
해설Note解説注解[검증된 핵심] 거북선 지폐 설득은 실제 있었다. [각색] ‘지폐 한 장이 그 자리에서 대출을 성사시켰다’는 건 과장 — 긴 거래의 한 장면이었고, 자금은 실주문이 조건이었다. 또 이 이야기는 ‘자동차’가 아니라 ‘조선’ 이야기다.[Verified] The turtle-ship pitch really happened. [Embellished] “One banknote clinched the loan on the spot” is overstated — it was one beat in a long deal, and the financing required real orders. Also, this is a SHIPBUILDING story, not a car story.[検証済] 亀甲船紙幣の説得は実際にあった。[脚色] 「紙幣一枚がその場で融資を成立させた」は誇張 — 長い取引の一場面で、資金は実注文が条件だった。またこれは「自動車」でなく「造船」の話だ。[已核实] 龟船纸币的游说确有其事。[已润色] “一张纸币当场促成贷款”属夸大 — 那是漫长交易的一幕,融资以真实订单为条件。且这是“造船”故事,非“汽车”故事。
“그는 배가 아니라, 역사를 담보로 내밀었다.”“He offered as collateral not a ship, but a history.”「彼は船でなく、歴史を担保に差し出した。」“他拿出作抵押的,不是船,而是历史。”

제3부 · 빈 백사장의 배Part 3 · Ships from a Bare Beach第3部 · 砂浜からの船第三部 · 荒滩上的巨轮
주문 먼저Orders First注文が先先接订单
조선소도 없이 배를 팔다Selling Ships with No Shipyard造船所もなく船を売る无船坞而先卖船
26만 톤짜리 두 척Two ships of 260,000 tons26万トンの二隻26万吨的两艘
- 그는 그리스 선주 리바노스에게서 약 26만 톤급 초대형 유조선 두 척의 주문을 받아냈다He secured an order from the Greek shipowner Livanos for two ~260,000-ton supertankers彼はギリシャの船主リヴァノスから約26万トン級の超大型タンカー二隻の注文を取り付けた他从希腊船东利瓦诺斯处,接下两艘约26万吨级超大油轮的订单
- 그때 한국은 1만 톤이 넘는 배를 만들어 본 적조차 없었다At that point Korea had never built a ship over 10,000 tons当時韓国は1万トンを超える船を造ったことすらなかった彼时韩国甚至从未造过万吨以上的船
- 아직 존재하지도 않는 조선소가, 세계 최대급 배 두 척을 짓기로 약속한 셈이었다A shipyard that did not yet exist had promised to build two of the world’s largest shipsまだ存在しない造船所が、世界最大級の船二隻を造ると約束したわけだ一座尚不存在的船坞,竟承诺建造两艘世界最大级的船
해설Note解説注解배포와 무모함은 종이 한 장 차이다 — 그가 이 도박을 이긴 것은 다음 장의 실행력 덕분이었다.Audacity and recklessness are a hair apart — he won this gamble through the execution on the next slide.大胆と無謀は紙一重だ — 彼がこの賭けに勝ったのは次章の実行力ゆえだった。胆识与鲁莽仅一线之隔 — 他赢下这场豪赌,靠的是下一页的执行力。
“그는 결과를 먼저 팔고, 그다음에 그것을 진짜로 만들었다.”“He sold the result first, then made it real.”「彼は結果を先に売り、その後で本物にした。」“他先卖出结果,再把它变为现实。”

제3부 · 빈 백사장의 배Part 3 · Ships from a Bare Beach第3部 · 砂浜からの船第三部 · 荒滩上的巨轮
동시에All at Once同時に同时
조선소와 배를 한꺼번에The Yard and the Ships at the Same Time造船所と船を一度に船坞与巨轮一并建
울산 미포 백사장, 1972년Mipo beach, Ulsan, 1972蔚山尾浦の砂浜、1972年蔚山尾浦沙滩,1972年
- 1972년, 울산 미포의 텅 빈 백사장에서 조선소 건설과 유조선 건조를 동시에 시작했다In 1972, on the empty Mipo beach in Ulsan, he began building the shipyard and the tankers simultaneously1972年、蔚山尾浦の空の砂浜で造船所建設とタンカー建造を同時に始めた1972年,在蔚山尾浦空旷的沙滩上,他同时开工建船坞与造油轮
- 도크를 파는 옆에서 배의 블록을 쌓아 올리는, 상식을 뒤집는 방식이었다As the dock was dug, the ship’s blocks rose beside it — a method that turned common sense upside downドックを掘る傍で船のブロックを積み上げる、常識を覆す方式だった一边挖船坞、一边在旁堆起船体分段 — 是颠覆常识的做法
- 시간이 없었기에, 두 가지를 따로 할 시간을 아예 하나로 합쳐 버렸다With no time to spare, he fused the two tasks that should have been done in sequence時間がなかったので、二つを別々にする時間をまとめて一つにした因没有余裕,他把本应先后进行的两件事合为一件
해설Note解説注解[검증된 핵심] 조선소와 배를 병행 건조한 것은 사실이며, 세계 조선사에서도 회자되는 일이다.[Verified] Building the yard and the ships in parallel is a fact, retold even in world shipbuilding history.[検証済] 造船所と船を並行建造したのは事実で、世界の造船史でも語られる。[已核实] 船坞与巨轮并行建造确有其事,甚至载入世界造船史。
“남들이 순서를 지킬 때, 그는 순서를 없앴다.”“While others kept the sequence, he abolished it.”「他人が順序を守る時、彼は順序をなくした。」“别人恪守次序时,他取消了次序。”

제3부 · 빈 백사장의 배Part 3 · Ships from a Bare Beach第3部 · 砂浜からの船第三部 · 荒滩上的巨轮
인도Delivery引き渡し交付
백사장이 세계 최대 조선소가 되다A Beach Becomes the World’s Largest Shipyard砂浜が世界最大の造船所に荒滩变为世界最大船坞
1974 → 19831974 → 19831974 → 19831974 → 1983
- 1974년, 첫 유조선 애틀랜틱 배런호가 자매선과 함께 인도되었다In 1974 the first tanker, Atlantic Baron, was delivered along with its sister ship1974年、初のタンカー、アトランティック・バロン号が姉妹船と共に引き渡された1974年,首艘油轮“大西洋男爵”号连同姊妹船一同交付
- 불과 2년 전만 해도 빈 백사장이던 곳에서, 세계적인 배가 바다로 나갔다From what had been a bare beach just two years earlier, a world-class ship put to seaわずか2年前まで空の砂浜だった所から、世界的な船が海へ出た仅两年前还是空滩之处,一艘世界级巨轮驶入了海洋
- 현대중공업의 울산 조선소는 1980년대 초 세계 최대 단일 조선소가 되었다By the early 1980s, Hyundai Heavy’s Ulsan yard had become the world’s largest single shipyard現代重工業の蔚山造船所は1980年代初頭、世界最大の単一造船所になった现代重工的蔚山船坞在1980年代初,成为世界最大的单一船坞
해설Note解説注解조선 신화의 이면에도 국가의 중화학공업 정책과 정책금융의 뒷받침이 있었음을 기억한다(§제4부 배경).Behind the shipbuilding legend, too, stood the state’s heavy-industry policy and policy financing (see Part 4 context).造船神話の裏にも国家の重化学工業政策と政策金融の支えがあったことを覚えておく(第4部の背景)。造船神话背后,同样有国家重化工政策与政策性融资的支撑(见第四部背景)。
“불과 몇 해 만에, 모래밭이 강철의 도시가 되었다.”“In just a few years, a sandbank became a city of steel.”「わずか数年で、砂浜が鋼の都市になった。」“短短数年,沙滩化作钢铁之城。”

제3부 · 빈 백사장의 배Part 3 · Ships from a Bare Beach第3部 · 砂浜からの船第三部 · 荒滩上的巨轮
현대자동차Hyundai Motor現代自動車现代汽车
조립에서 자기 차로From Assembly to a Car of Its Own組み立てから自社の車へ从组装到自有之车
1967년, 그리고 코티나1967, and the Cortina1967年、そしてコルティナ1967年,与柯蒂纳
- 1967년 현대자동차가 설립되었고, 동생 정세영이 실무를 이끌었다Hyundai Motor was established in 1967, with his younger brother Chung Se-yung running operations1967年現代自動車が設立され、弟の鄭世永が実務を率いた1967年现代汽车成立,其弟郑世永主持实务
- 처음에는 영국 포드의 코티나를 부품으로 들여와 울산에서 조립하는 데서 출발했다It began by importing Britain’s Ford Cortina as kits and assembling them in Ulsan最初は英フォードのコルティナを部品で入れ蔚山で組み立てるところから始めた起初以进口英国福特柯蒂纳的散件、在蔚山组装起步
- 그러나 정주영은 곧 ‘우리 손으로 만든 차’를 향해 나아갔다But Chung soon pushed toward “a car made by our own hands”だが鄭周永はすぐ「自分たちの手で作った車」へ進んだ但郑周永很快便朝着“自己造的车”迈进
해설Note解説注解1967년 현대자동차는 1946년 정비소와 다른 회사다 — 이름만 이어졌을 뿐 별개의 법인·사업이다.The 1967 Hyundai Motor is a different company from the 1946 repair shop — only the name carried over.1967年の現代自動車は1946年の整備所とは別会社だ — 名が継がれただけの別法人・事業だ。1967年的现代汽车与1946年的修理厂是不同的公司 — 仅名称沿用,实为另一法人与业务。
“조립은 배움이었고, 그 배움의 목표는 언제나 ‘우리 차’였다.”“Assembly was an apprenticeship, and its goal was always ‘our own car.’”「組み立ては学びであり、その目標は常に『自分たちの車』だった。」“组装是学徒之路,其目标始终是‘自己的车’。”

제3부 · 빈 백사장의 배Part 3 · Ships from a Bare Beach第3部 · 砂浜からの船第三部 · 荒滩上的巨轮
포니The Ponyポニー小马
한국 최초의 고유 모델Korea’s First Original Model韓国初の固有モデル韩国首款自主车型
포니, 1975–76The Pony, 1975–76ポニー、1975–76小马,1975–76
- 1975~76년 나온 포니는 한국 최초로 대량 생산된 고유 브랜드 자동차였다The Pony (1975–76) was Korea’s first mass-produced, original-badge car1975〜76年に出たポニーは韓国初の量産固有ブランド車だった1975至76年问世的小马,是韩国首款量产的自主品牌汽车
- 다만 그 속은 국제 합작이었다 — 이탈리아 디자인, 미쓰비시 구동계, 영국인 엔지니어의 총괄Yet its core was an international collaboration — Italian styling, a Mitsubishi drivetrain, a British engineering leadただし中身は国際合作だった — イタリアのデザイン、三菱の駆動系、英国人技師の統括惟其内核是国际合作 — 意大利设计、三菱动力总成、英国工程师总揽
- ‘조립’ 수준의 국산화였지만, 우리 이름을 단 첫 차라는 상징성은 컸다It was localization at the “assembly” level, but the symbolism of the first car bearing a Korean name was immense「組み立て」水準の国産化だったが、自国名を冠した初の車という象徴性は大きかった虽属“组装”层面的国产化,但挂着本国之名的第一辆车,象征意义巨大
해설Note解説注解‘순수 국산차’ 신화는 과장이다 — 완전히 한국 기술로 만든 엔진(알파)은 1991년에야 나온다. 그럼에도 ‘첫 고유 모델’이라는 사실은 옳다.The “purely Korean car” myth is overstated — a fully Korean-designed engine (Alpha) came only in 1991. Still, “first original model” is accurate.「純粋な国産車」神話は誇張だ — 完全に韓国技術のエンジン(アルファ)は1991年にやっと出た。それでも「初の固有モデル」は正しい。“纯国产车”神话被夸大 — 完全以韩国技术打造的发动机(阿尔法)迟至1991年才问世。但“首款自主车型”属实。
“완전한 국산은 아니었지만, 완전한 시작이기는 했다.”“It was not wholly Korean-made — but it was wholly a beginning.”「完全な国産ではなかったが、完全な始まりではあった。」“它并非全然国产,却确是全然的开端。”

제3부 · 빈 백사장의 배Part 3 · Ships from a Bare Beach第3部 · 砂浜からの船第三部 · 荒滩上的巨轮
세계로To the World世界へ走向世界
포니에서 엑셀, 그리고 아메리카From the Pony to the Excel, and Americaポニーからエクセル、そしてアメリカ从小马到超越,走向美国
1976 → 19861976 → 19861976 → 19861976 → 1986
- 1976년 포니의 첫 수출은 에콰도르로 겨우 몇 대를 보낸, 상징에 가까운 것이었다The Pony’s first exports in 1976 — a mere handful to Ecuador — were more symbol than scale1976年ポニーの初輸出はエクアドルへ僅か数台の、象徴に近いものだった1976年小马的首次出口,仅向厄瓜多尔发出寥寥数辆,象征意义大于规模
- 진짜 세계 무대는 1986년, 엑셀이 미국 시장에 오르며 열렸다 — 미국에 상륙한 첫 한국 차였다The real world stage opened in 1986, when the Excel reached the US — the first Korean car in America本当の世界舞台は1986年、エクセルが米国市場に上がって開いた — 米国に上陸した初の韓国車だった真正的世界舞台在1986年开启,超越进入美国市场 — 那是登陆美国的第一辆韩国车
- 싼값에 기록적으로 팔렸지만, 곧 드러난 품질 문제가 오래도록 브랜드에 상처를 남겼다It sold in record numbers on price — but quality problems soon surfaced and scarred the brand for years安値で記録的に売れたが、間もなく露呈した品質問題が長くブランドを傷つけた凭低价创下销量纪录,但随即暴露的质量问题长久损伤了品牌
해설Note解説注解엑셀의 기록적 데뷔와 뒤이은 품질 논란은 둘 다 사실이다 — 성공담만 떼어 내지 않는다.The Excel’s record debut and its subsequent quality troubles are both facts — we don’t excerpt only the success.エクセルの記録的デビューと後の品質問題は両方事実だ — 成功談だけを切り出さない。超越的纪录首秀与随后的质量风波皆为事实 — 我们不只截取成功。
“세계로 나가는 문은 열렸지만, 그 문턱에서 값싼 성공의 대가도 함께 배웠다.”“The door to the world opened — and at its threshold came the lesson of cheap success’s price.”「世界への扉は開いたが、その敷居で安い成功の代価も学んだ。」“通向世界的门开了 — 也在门槛上学到了廉价成功的代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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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부 · 바다와 사막을 구부리다Part 4 · Bending the Sea and the Desert第4部 · 海と砂漠を曲げる第四部 · 弯折海与沙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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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와 사막을 구부리다Bending the Sea and the Desert海と砂漠を曲げる弯折海与沙漠
제4부 · 유조선으로 바다를 막고, 사막에 항구를 짓다Part 4 · Damming the sea with a tanker, building a harbor in the desert第4部 · タンカーで海を塞ぎ、砂漠に港を造る第四部 · 以油轮堵海,于沙漠建港
제4부 · 바다와 사막을 구부리다Part 4 · Bending the Sea and the Desert第4部 · 海と砂漠を曲げる第四部 · 弯折海与沙漠
서산 간척Seosan瑞山干拓瑞山围垦
바다를 땅으로 바꾸다Turning Sea into Land海を土地に変える化海为陆
서산 간척지The Seosan reclamation瑞山干拓地瑞山围垦地
- 1980년대, 현대는 서해의 광대한 갯벌을 막아 약 154제곱킬로미터의 땅을 만드는 간척에 나섰다In the 1980s Hyundai undertook to dam a vast Yellow Sea tidal flat, reclaiming about 154 square kilometers of land1980年代、現代は黄海の広大な干潟を塞ぎ約154平方キロの土地を造る干拓に乗り出した1980年代,现代着手围堵黄海广袤滩涂,造出约154平方公里土地
- 식량 자급을 위한 농지 확보가 목표였다The aim was to secure farmland for food self-sufficiency食糧自給のための農地確保が目標だった目标是为粮食自给而获取农田
- 그러나 마지막 물막이 구간에서, 자연이 인간의 계획을 비웃었다But at the final closure, nature mocked the human planだが最後の締め切り区間で、自然が人間の計画を嘲笑った但在最后的合龙段,自然嘲笑了人的计划
해설Note解説注解대규모 간척은 오늘날 생태적 비판을 받는다 — 다음 장에서 그 성취와 함께 그늘도 정직하게 본다.Large-scale reclamation is criticized today on ecological grounds — the next slide sees both the feat and its shadow honestly.大規模干拓は今日、生態的批判を受ける — 次章でその達成と共に影も正直に見る。大规模围垦如今受生态批评 — 下一页诚实审视其成就与阴影。
“그는 땅이 부족하면, 바다에서 땅을 꺼내려 했다.”“When land ran short, he set out to pull land from the sea.”「土地が足りなければ、海から土地を取り出そうとした。」“土地不足,他便想从海里取出土地。”

제4부 · 바다와 사막을 구부리다Part 4 · Bending the Sea and the Desert第4部 · 海と砂漠を曲げる第四部 · 弯折海与沙漠
정주영 공법The Chung Method鄭周永工法郑周永工法
폐유조선으로 바다를 막다Damming the Tide with a Scrapped Tanker廃タンカーで潮を塞ぐ以废油轮堵住潮水
1984년, 세계 최초의 발상1984, a world-first idea1984年、世界初の発想1984年,世界首创之想
- 마지막 물막이에서 조수 차가 약 9미터, 물살이 초속 8미터를 넘어 집채만 한 바위도 쓸려 갔다At the final closure the tidal range hit about 9 meters and the current topped 8 meters per second, sweeping away house-sized boulders最後の締め切りで潮差が約9メートル、流速が毎秒8メートルを超え、家ほどの岩も流された最后合龙时潮差约9米、流速超每秒8米,连房屋大小的巨石也被冲走
- 정주영은 폐기될 22만 톤급 유조선을 가로로 가라앉혀 물살을 막고, 그 뒤로 흙을 부었다Chung sank a 220,000-ton scrapped tanker sideways to throttle the current, then poured fill behind it鄭周永は廃棄予定の22万トン級タンカーを横に沈めて流れを塞ぎ、その後ろに土を入れた郑周永将一艘待报废的22万吨级油轮横向沉入以挡水流,再在其后填土
- 세계 어디에도 없던 이 즉흥적 발상은 ‘정주영 공법’으로 불리게 되었다This improvised idea, unheard of anywhere, came to be called the “Chung Ju-yung method”世界のどこにもなかったこの即興の発想は「鄭周永工法」と呼ばれるようになった这一世所未见的即兴之想,被称为“郑周永工法”
해설Note解説注解[검증] 폐유조선으로 물막이를 한 것은 사실이다. [유의] ‘280억 절감·36개월 단축’ 같은 수치는 현대 측 자료이고, 막아 만든 담수호는 훗날 심하게 오염되었다는 그늘도 있다.[Verified] The tanker closure is real. [Caution] Figures like “28 billion won saved / 36 months cut” are Hyundai’s own, and the enclosed freshwater lakes later became badly polluted — a real downside.[検証] 廃タンカーでの締め切りは事実だ。[留意]「280億節減・36か月短縮」等の数字は現代側資料で、締め切って造った淡水湖は後にひどく汚染された影もある。[已核实] 以废油轮合龙确有其事。[注意]“节省280亿·缩短36个月”等数字出自现代方,且围成的淡水湖后来严重污染 — 是真实的阴影。
“문제가 상식을 벗어나자, 그의 해법도 상식을 벗어났다.”“When the problem left common sense behind, so did his solution.”「問題が常識を外れると、彼の解法も常識を外れた。」“当问题超出常识,他的解法也超出常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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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베일Jubailジュベール朱拜勒
국가 예산의 절반짜리 공사A Job Worth Half the National Budget国家予算の半分の工事相当于半个国家预算的工程
사우디아라비아, 1976년Saudi Arabia, 1976サウジアラビア、1976年沙特阿拉伯,1976年
- 1976년 현대는 사우디의 주베일 산업항 공사를 약 9억 3천만 달러에 따냈다In 1976 Hyundai won the Jubail Industrial Harbour project in Saudi Arabia for about US$931 million1976年現代はサウジのジュベール産業港工事を約9億3千万ドルで受注した1976年现代以约9.31亿美元中标沙特朱拜勒工业港工程
- 그것은 당시 한국 한 해 예산의 절반에 맞먹는, 세계 최대 규모의 건설 수주였다It equaled about half of Korea’s entire annual budget — the largest construction order in the world at the timeそれは当時の韓国の年間予算の半分に相当する、世界最大規模の建設受注だった那相当于当时韩国全年预算的一半,是世界最大规模的建设订单
- 유럽의 쟁쟁한 회사들을 제치고 신생 한국 기업이 따낸 일이었다A young Korean firm had beaten Europe’s established giants to win it欧州の名だたる会社を退け、新興の韓国企業が勝ち取った仕事だった一家新兴的韩国企业击败欧洲名企夺得此单
해설Note解説注解‘중동 붐’은 외화가 절실하던 시기에 한국 경제를 떠받친 기둥이었고, 현대가 그 선두에 있었다.The “Middle East boom” was a pillar propping up the Korean economy at a time of desperate need for foreign currency, and Hyundai led it.「中東ブーム」は外貨が切実だった時期に韓国経済を支えた柱で、現代がその先頭にいた。“中东热潮”是外汇奇缺之时支撑韩国经济的支柱,而现代走在最前。
“사막의 항구 하나가, 한 나라의 자신감을 통째로 바꿔 놓았다.”“A single harbor in the desert changed a nation’s confidence wholesale.”「砂漠の港一つが、一国の自信を丸ごと変えた。」“沙漠中的一座港口,彻底改变了一个国家的自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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뗏목 작전The Raft筏作戦木筏行动
두 대양을 건넌 강철 구조물Steel Structures Towed Across Two Oceans二つの大洋を渡った鋼構造物横渡两大洋的钢结构
울산에서 사우디까지From Ulsan to Saudi Arabia蔚山からサウジまで从蔚山到沙特
- 현대는 거대한 강철 구조물(재킷) 89개를 울산에서 만들어, 배로 끌고 갔다Hyundai fabricated 89 giant steel structures (jackets) in Ulsan and towed them by sea現代は巨大な鋼構造物(ジャケット)89基を蔚山で作り、船で曳いて行った现代在蔚山制造89座巨型钢结构(导管架),以船拖运
- 약 1만 2천 킬로미터, 태평양과 인도양을 건너는 대장정이었다It was an epic voyage of about 12,000 kilometers across the Pacific and Indian Oceans約1万2千キロ、太平洋とインド洋を渡る大長征だった那是横渡太平洋与印度洋、约1.2万公里的远征
- 그렇게 옮긴 구조물을 오차 몇 센티미터 안에 앉히자, 외국 기술자들이 혀를 내둘렀다Setting those structures within a few centimeters of tolerance left foreign engineers astonishedそうして運んだ構造物を誤差数センチ以内に据えると、外国の技師が舌を巻いた将如此运来的结构物安放至误差数厘米之内,令外国工程师叹为观止
해설Note解説注解남들이 ‘무모하다’던 방식으로 공기와 비용을 줄인 이 일화는, 그의 실행력을 상징하는 장면으로 남았다.This episode — cutting time and cost by a method others called reckless — remains emblematic of his execution.他人が「無謀」と言った方式で工期と費用を削ったこの逸話は、彼の実行力を象徴する場面として残る。以他人斥为“鲁莽”之法削减工期与成本,这段轶事成了他执行力的象征。
“그는 공장을 옮길 수 없자, 공장이 만든 것을 바다 건너로 옮겼다.”“Unable to move the factory, he moved what the factory made — across an ocean.”「工場を動かせないと、工場が作った物を海の向こうへ動かした。」“无法搬动工厂,他便把工厂造出的东西搬过大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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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The Manその人其人
새벽 네 시의 검소한 거인A Frugal Giant at Four in the Morning午前四時の質素な巨人凌晨四点的俭朴巨人
그가 가꾼 에토스The ethos he cultivated彼が培ったエートス他所修养的气质
- 막대한 부를 이룬 뒤에도 그는 새벽 서너 시에 일어나 소박한 밥을 먹고, 낡은 구두를 고쳐 신었다고 전한다Even after amassing immense wealth, it is told, he rose at three or four, ate plain meals, and had his worn shoes resoled莫大な富を成した後も、彼は午前三、四時に起き質素な食事をとり、古い靴を直して履いたと伝わる据传即便积累巨富,他仍凌晨三四点起床、吃简朴饭食、把旧鞋修补再穿
- 이 검소·근면의 상은 그의 자기 서사에서 크게 강조된 부분이다This image of thrift and diligence is a much-emphasized part of his own self-narrativeこの質素・勤勉の像は彼の自己叙述で大きく強調された部分だ这一俭朴·勤勉的形象,是他自我叙事中被大力强调的部分
- 과장을 걷어내도, 이른 기상과 절약이라는 큰 결은 여러 증언으로 뒷받침된다Even setting aside exaggeration, the broad pattern of early rising and thrift is backed by many accounts誇張を除いても、早起きと節約という大筋は多くの証言に支えられる即便剔除夸张,早起与节俭的大致特征仍有诸多证言支撑
해설Note解説注解가장 극적인 단일 일화들은 자서전 출처가 많다 — 큰 결은 믿되, 세부는 ‘그의 이야기’로 읽는다.The most dramatic single anecdotes often trace to his memoirs — trust the broad pattern, but read the details as “his telling.”最も劇的な単一の逸話は自伝出典が多い — 大筋は信じつつ、細部は「彼の物語」として読む。最戏剧化的单个轶事多出自自传 — 信其大致,而将细节读作“他的讲述”。
“그는 부를 목적이 아니라, 더 지을 것을 위한 연장으로 여겼다.”“He treated wealth not as an end, but as a tool for building more.”「彼は富を目的でなく、さらに造るための道具と見た。」“他视财富非为目的,而为再建之工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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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발판The Era’s Scaffolding時代の足場时代的脚手架
기적을 떠받친 시대의 발판The Scaffolding Beneath the Miracle奇跡を支えた時代の足場支撑奇迹的时代脚手架
국가주도 개발State-led development国家主導の開発国家主导的开发
- 현대의 도약은 개인의 뚝심만으로 이뤄지지 않았다 — 관치금융과 정책적 특혜가 함께 있었다Hyundai’s leaps were not made by grit alone — state-steered credit and policy privileges came with them現代の飛躍は個人の粘りだけでは成らなかった — 官治金融と政策的特恵が伴った现代的跃升非仅凭个人韧劲 — 还有官治金融与政策优惠相随
- 박정희 정부의 중화학공업 정책(1973)은 조선·자동차·건설에 정부 보증과 자금을 몰아주었다Park Chung-hee’s Heavy & Chemical Industrialization drive (1973) funneled state guarantees and credit into ships, cars, and construction朴正煕政権の重化学工業政策(1973)は造船・自動車・建設に政府保証と資金を集中させた朴正熙政府的重化工政策(1973)将政府担保与资金集中投向造船·汽车·建设
- 기업가의 담대함과 발전국가의 설계가 맞물린 결과가 ‘한강의 기적’이었다The “Miracle on the Han” was the interlocking of entrepreneurial daring and a developmental state’s design企業家の大胆さと発展国家の設計が噛み合った結果が「漢江の奇跡」だった“汉江奇迹”是企业家的胆识与发展型国家设计相互咬合之果
해설Note解説注解이 맥락을 지우면 신화가 되고, 이 맥락만 강조하면 개인을 지운다 — 둘을 함께 본다.Erase this context and it becomes myth; stress only this context and it erases the man — we hold both.この文脈を消せば神話になり、この文脈だけ強調すれば個人を消す — 両方を見る。抹去此脉络便成神话,只强调此脉络又抹去个人 — 我们兼看二者。
“한 사람의 뚝심은 진짜였지만, 그 뚝심은 시대라는 활주로 위를 달렸다.”“One man’s grit was real — but it ran along the runway of an era.”「一人の粘りは本物だったが、その粘りは時代という滑走路を走った。」“一个人的韧劲是真的 — 但那韧劲奔跑在时代这条跑道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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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이야기The Other Storyもう一つの物語另一个故事
성장을 떠받친 손들The Hands That Carried the Growth成長を支えた手扛起增长的双手
1987, 노동자 대투쟁1987, the Great Workers’ Struggle1987年、労働者大闘争1987年,劳动者大斗争
- 빠른 성장은 긴 노동 시간과 낮은 임금, 억눌린 노동권 위에서 이뤄졌다The rapid growth rested on long hours, low wages, and suppressed labor rights急成長は長時間労働と低賃金、抑えられた労働権の上に成った高速增长立于长时劳动、低工资与被压制的劳工权利之上
- 1987년 노동자 대투쟁 때, 울산의 현대 사업장들은 그 격동의 한복판에 있었다In the 1987 Great Workers’ Struggle, Hyundai’s Ulsan plants stood at the center of the upheaval1987年の労働者大闘争で、蔚山の現代事業場はその激動の只中にあった1987年劳动者大斗争中,蔚山的现代厂区正处于那场激荡的中心
- 길과 배와 차를 실제로 지어 올린 무수한 손들 또한,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다The countless hands that actually built the roads, ships, and cars are also protagonists of this story道と船と車を実際に造り上げた無数の手もまた、この物語の主人公だ真正建起路·船·车的无数双手,也是这个故事的主角
해설Note解説注解위인의 서사가 노동을 지우지 않도록, 성장의 인간적 대가를 나란히 기록한다.So the great-man narrative does not erase labor, we record the human cost of growth alongside it.偉人の物語が労働を消さぬよう、成長の人間的代価を並べて記す。为免伟人叙事抹去劳工,我们并列记下增长的人性代价。
“한 사람의 이름 뒤에는, 이름 없이 그것을 지어 올린 수많은 손이 있었다.”“Behind one man’s name stood countless nameless hands that built it.”「一人の名の後ろには、名もなくそれを築いた無数の手があった。」“一个人名字的背后,是无数无名却筑起它的双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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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눈에 보는 정주영Chung Ju-yung at a Glanceひと目でわかる鄭周永一览郑周永
업적으로 본 한 생애A life seen through its feats業績で見る一生以功业看一生
1
태생Born生出身
1915191519151915
북녘 가난한 농가의 장남, 훗날 실향민Eldest son of a poor northern farm, later a displaced northerner北の貧しい農家の長男、後の失郷民北方贫农家的长子,后成离乡之人
2
시작The Start始まり起步
RICE→CARSRICE→CARSRICE→CARSRICE→CARS
쌀가게 배달원에서 시작해 길·배·차를 짓다From rice-shop delivery boy to roads, ships, and cars米屋の配達員から道・船・車へ从米店送货郎到路·船·车
3
길The Road道路
1970197019701970
경부고속도로를 2년 5개월 만에The Seoul–Busan Expressway in just 2 years 5 months京釜高速道路をわずか2年5か月で京釜高速公路仅用2年5个月
4
배The Ships船船
ULSANULSANULSANULSAN
빈 백사장에서 조선소와 초대형 유조선을 동시에A shipyard and supertankers built at once on a bare beach砂浜で造船所と超大型タンカーを同時に在荒滩上同时造船坞与超大油轮
5
소떼The Cattle牛の群れ牛群
1998199819981998
소 1,001마리를 몰고 판문점을 넘다Leading 1,001 cattle across Panmunjom牛1,001頭を率いて板門店を越える率1,001头牛跨越板门店
6
정신The Spirit精神精神
TRY ITTRY ITTRY ITTRY IT
“이봐, 해봤어?” — 하면 된다는 시대의 얼굴“Did you even try?” — the face of a can-do era「なあ、やってみたのか?」— やればできる時代の顔“喂,你试过了吗?”— 一个“事在人为”时代的面孔
“쌀가게에서 조선소까지, 한 사람의 손이 한 시대를 지어 올렸다.”“From a rice shop to a shipyard, one man’s hands built an era.”「米屋から造船所まで、一人の手が一時代を築き上げた。」“从米店到船坞,一人之手筑起了一个时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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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년의 도전Late Ventures晩年の挑戦晚年的挑战
올림픽을 부르고, 대통령에 도전하다Winning an Olympics, Running for President五輪を招き、大統領に挑む招来奥运,问鼎总统
1981 · 19921981 · 19921981 · 19921981 · 1992
- 1981년 그는 서울올림픽 유치위원장으로 ‘바덴바덴의 기적’을 이끄는 데 한몫했다In 1981 he chaired the Seoul Olympics bid, helping bring about the “Miracle of Baden-Baden”1981年、彼はソウル五輪誘致委員長として「バーデンバーデンの奇跡」を導く一役を担った1981年,他任首尔奥运申办委员长,助力促成“巴登-巴登奇迹”
- 1992년에는 통일국민당을 만들어 총선에서 의석을 얻고, 대통령 선거에 나섰다In 1992 he founded the Unification National Party, won seats in the general election, and ran for president1992年には統一国民党を作り総選挙で議席を得て、大統領選に出た1992年他创立统一国民党,在大选中赢得议席,并竞选总统
- 대선에서는 약 16%로 3위에 그쳤고, 이듬해 대선 자금 문제로 유죄 판결을 받은 뒤 정계를 떠났다He finished third with about 16%, and the next year, convicted over campaign funds, left politics大統領選では約16%で3位にとどまり、翌年、選挙資金問題で有罪判決を受け政界を去った总统选举中他以约16%位列第三,次年因竞选资金问题获罪,遂退出政坛
해설Note解説注解재벌 총수의 대선 도전과 자금 유죄는, 정치와 경제의 유착과 재벌 권력이라는 무거운 물음을 남겼다 — 미화하지 않는다.A chaebol chairman’s presidential bid and funds conviction left heavy questions about business-politics ties and chaebol power — we do not gloss over them.財閥総帥の大統領挑戦と資金有罪は、政経関係と財閥権力という重い問いを残した — 美化しない。财阀掌门的竞选与资金罪案,留下政商关系与财阀权力的沉重之问 — 我们不加美化。
“그는 산업의 정상에서, 정치라는 낯선 산을 오르려 했다.”“From the summit of industry, he tried to climb the unfamiliar mountain of politics.”「産業の頂から、彼は政治という不慣れな山を登ろうとした。」“从产业之巅,他试图攀登政治这座陌生之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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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떼 방북The Cattle Drive牛の群れ訪北牛群访朝
소 천 마리를 몰고 고향으로Home, Leading a Thousand Cattle牛千頭を率いて故郷へ率千头牛回故乡
1998년, 판문점을 넘어1998, across Panmunjom1998年、板門店を越えて1998年,跨越板门店
- 1998년, 여든셋의 그는 소 500마리를 트럭에 싣고 판문점을 넘어 북녘 고향으로 향했다In 1998, at 83, he led 500 cattle in trucks across Panmunjom toward his northern homeland1998年、83歳の彼は牛500頭をトラックに載せ板門店を越えて北の故郷へ向かった1998年,83岁的他将500头牛装车,跨越板门店奔向北方故乡
- 그해 가을 다시 501마리를 더 몰고 가, 상징적으로 ‘1,001마리’가 되었다That autumn he brought another 501, making a symbolic “1,001”その秋さらに501頭を連れ、象徴的に「1,001頭」となった当年秋他又赶去501头,象征性地凑成“1,001头”
- 어린 날 아버지의 소 판 돈을 들고 떠났던 그가, 반세기 뒤 천 배로 갚아 돌아온 셈이었다The boy who had left with his father’s cow money returned, half a century later, repaying it a thousandfold幼い日、父の牛を売った金を持って去った彼が、半世紀後に千倍で返して帰ったわけだ当年携父亲卖牛之钱离去的少年,半世纪后以千倍偿还而归
해설Note解説注解[검증] 500+501마리의 두 차례 방북은 사실이며, 금강산 관광의 문을 열었다. [상징] ‘1,001’은 ‘계속’을 뜻하는 상징 숫자이고, ‘한 마리를 천 배로 갚았다’는 완결된 도덕 서사는 언론·자서전의 윤색이다.[Verified] The two crossings (500 + 501) are real and opened Mount Kumgang tourism. [Symbolic] “1,001” is a symbolic figure meaning “continuation,” and the tidy “repaid one cow a thousandfold” morality arc is media/memoir polish.[検証] 500+501頭の二度の訪北は事実で、金剛山観光の扉を開いた。[象徴]「1,001」は「継続」を意味する象徴数で、「一頭を千倍で返した」という完結した道徳物語は報道・自伝の潤色だ。[已核实] 500+501头的两次访朝确有其事,并开启金刚山旅游。[象征]“1,001”是寓意“延续”的象征数字,“以千倍偿一牛”这一圆满道德叙事,属媒体与自传的润色。
“한 마리 소로 시작된 이야기가, 천 마리 소로 고향에 닿았다.”“A story that began with one cow reached home as a thousand.”「一頭の牛で始まった物語が、千頭の牛で故郷に届いた。」“以一头牛开篇的故事,以千头牛抵达故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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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주영을 어떻게 기억할까How to Remember Chung Ju-yung鄭周永をどう記憶するか该如何铭记郑周永
존경과 정직 사이에서Between respect and honesty尊敬と正直の間で在敬重与诚实之间
- 뚝심: 없는 조선소로 배를 팔고, 폐유조선으로 바다를 막은 실행력은 실재했다The grit: selling ships from no shipyard, damming the sea with a scrapped tanker — that execution was real粘り:無い造船所で船を売り、廃タンカーで海を塞いだ実行力は実在した韧劲:以不存在的船坞卖船、以废油轮堵海,那份执行力真实存在
- 맥락: 그 성취는 국가주도 개발·정책금융·보호시장이라는 시대의 발판 위에 섰다The context: those feats stood on the era’s scaffolding of state-led development, policy financing, and protected markets文脈:その達成は国家主導の開発・政策金融・保護市場という時代の足場の上に立った脉络:那些成就立于国家主导开发·政策性融资·保护市场的时代脚手架之上
- 대가: 빠른 성장은 긴 노동과 인명의 대가를 치렀고(1987년 노동자 대투쟁), 그것도 그의 이야기다The cost: rapid growth exacted long hours and lives (the 1987 Great Workers’ Struggle) — that, too, is his story代価:急成長は長時間労働と人命の代価を払い(1987年労働者大闘争)、それも彼の物語だ代价:高速增长付出了长时劳动与人命的代价(1987年劳动者大斗争),那也是他的故事
“위인을 기리는 가장 좋은 방법은, 신화가 아니라 사실로 그를 마주하는 것이다.”“The best way to honor a great figure is to meet him in fact, not in myth.”「偉人を称える最良の方法は、神話でなく事実で向き合うことだ。」“铭记伟人的最好方式,是以事实而非神话与之相对。”

해봤어, 라는 유산The Legacy of “Did You Try?”やってみたのか、という遺産“试过了吗”这份遗产
정주영 · Chung Ju-yung · 1915–2001 · Thank YouChung Ju-yung · 1915–2001 · Thank You鄭周永 · 1915–2001 · Thank You郑周永 · 1915–2001 · 谢谢观看
- 만년의 형제간 경영권 다툼(2000년 ‘왕자의 난’) 속에 현대는 여러 그룹으로 갈라지기 시작했고, 2001년 그의 사후 대북 사업도 굴곡을 겪었다Amid a late succession struggle (the 2000 ‘Princes’ War’) Hyundai began splitting into several groups, and after his death in 2001 the North Korea business met turbulence晩年の兄弟間の経営権争い(2000年「王子の乱」)の中で現代は複数のグループに分かれ始め、2001年の彼の死後、対北事業は曲折を経た在晚年兄弟间的经营权之争(2000年“王子之乱”)中,现代开始分裂为数个集团,2001年他离世后,对朝事业几经波折
- 그럼에도 ‘길이 없으면 닦는다’는 그의 태도는, 한 세대의 한국인에게 하나의 정신이 되었다Yet his attitude — “if there is no road, build one” — became a spirit for a generation of Koreansそれでも「道がなければ切り開く」という彼の態度は、一世代の韓国人にとって一つの精神になった但他“无路便开路”的态度,成了一代韩国人的一种精神
- 그를 기리되 성인으로 만들지 않는 것 — 그것이 그가 지은 시대를 정직하게 잇는 길이다To honor him without sainting him — that is how we honestly inherit the era he built彼を称えつつ聖人にしないこと — それが彼の築いた時代を正直に継ぐ道だ敬重他而不将他封圣 — 这才是诚实承继他所建时代之道
“그가 남긴 가장 큰 유산은 배도 차도 아니라, ‘해보기 전엔 모른다’는 한마디였다.”“His greatest legacy was neither ship nor car, but a single line: ‘you cannot know until you try.’”「彼が遺した最大の遺産は船でも車でもなく、『やってみるまで分からない』という一言だった。」“他留下的最大遗产,不是船也不是车,而是一句:‘不试便不会知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