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창업주 · 유복한 지주가의 계획가에서 반도체 제국의 설계자로 — 그리고 정직하게 본 그 그늘Founder of Samsung · From a wealthy landlord’s planner to the architect of a semiconductor empire — and an honest look at its shadowsサムスン創業者 · 裕福な地主の家の計画家から半導体帝国の設計者へ — そしてその影を正直に三星创始人 · 从富裕地主家的谋划者,到半导体帝国的设计师 — 并诚实审视其阴影
이병철Lee Byung-chul李秉喆李秉喆
유복한 지주가의 계획가에서, 반도체 제국의 설계자로 — 그리고 정직하게 본 그 그늘From a wealthy landlord’s planner to the architect of a semiconductor empire — and an honest look at its shadows裕福な地主の家の計画家から、半導体帝国の設計者へ — そしてその影を正直に从富裕地主家的谋划者,到半导体帝国的设计师 — 并诚实审视其阴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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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 계획가의 승부수Prologue · The Planner’s Gambleプロローグ · 計画家の勝負手序 · 谋划者的赌注
후크The Hook導入引子
도쿄에서 걸려 온 전화A Phone Call from Tokyo東京からの電話来自东京的电话
1983년 2월 8일8 February 19831983年2月8日1983年2月8日
- 일흔셋의 이병철은 병든 몸으로 도쿄에서 서울 본사에 전화를 걸어, 삼성을 반도체(DRAM) 사업에 밀어 넣었다At 73 and ailing, Lee phoned Seoul HQ from Tokyo and committed Samsung to the DRAM semiconductor business73歳の李秉喆は病を押して東京からソウル本社に電話し、サムスンを半導体(DRAM)事業に投じた73岁且抱病的李秉喆自东京致电首尔总部,将三星投入DRAM半导体业务
- 당시 안팎의 거의 모두가 그 결정을 무모하다고 여겼다At the time, almost everyone inside and out called the decision reckless当時、内外のほぼ全員がその決定を無謀と見た当时内外几乎所有人都认为这一决定鲁莽
- 그 도박이 삼성을 기술 거인으로 바꾸지만, 그는 결실을 보기 전에 세상을 떠난다That gamble would turn Samsung into a tech giant — but he would die before the payoffその賭けがサムスンを技術の巨人に変えるが、彼は結実を見る前に世を去る那场赌注将把三星变为科技巨人 — 但他在收获之前便离世
해설Note解説注解이 데크는 그 전략적 안목을 기리되, 얼룩(1966년 밀수 사건·무노조 경영·국가 특혜)을 세탁하지 않는다.This deck honors his strategic vision without laundering the stains — the 1966 smuggling scandal, the no-union doctrine, and state favor.このデッキはその戦略眼を称えつつ、汚点(1966年密輸事件・無労組経営・国家特恵)を洗浄しない。本演示颂扬其战略眼光,却不为污点(1966走私案·无工会经营·国家特惠)漂白。
“가장 신중한 사람이, 가장 대담한 한 수를 두었다.”“The most cautious of men made the boldest of moves.”「最も慎重な人が、最も大胆な一手を打った。」“最谨慎之人,落下了最大胆的一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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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 깨기Myth-Buster神話崩し破除神话
가난뱅이가 아니었다He Was Not a Poor Boy貧乏人ではなかった他并非穷小子
지주가의 아들A landlord’s son地主の息子地主之子
- 그는 맨손으로 일어선 가출 소년이 아니라, 천석꾼 지주 집안에서 태어났다He was no bare-handed runaway but was born into a family of a thousand-seok landlord彼は素手で立ち上がった家出少年でなく、千石の地主の家に生まれた他不是白手起家的出走少年,而是生于千石地主之家
- 사업의 종잣돈은 물려받은 땅이었다 — 시작부터 자본이 있었다His seed capital was inherited land — he began with capital in hand事業の元手は相続した土地だった — 始めから資本があった其创业本钱是继承的土地 — 起步便有资本
- 그러니 그의 이야기는 ‘무일푼의 신화’가 아니라, ‘자본을 굴린 계획가의 전략’으로 읽어야 한다So his story reads not as a “from-nothing myth” but as the strategy of a planner working capitalだから彼の話は「無一文の神話」でなく「資本を回した計画家の戦略」として読むべきだ故其故事应读作“运作资本的谋划者之策”,而非“一无所有的神话”
해설Note解説注解‘가난을 딛고 일어선 영웅’ 서사를 그에게 씌우지 않는 것 — 그것이 정직한 출발점이다.Not draping the “hero who rose from poverty” narrative on him is the honest starting point.「貧しさを克服した英雄」の物語を彼に着せないこと — それが正直な出発点だ。不将“克服贫困的英雄”叙事套在他身上 — 这是诚实的起点。
“그의 자수성가는 무에서가 아니라, 잘 놓인 발판 위에서 시작되었다.”“His self-making began not from nothing, but from a well-laid footing.”「彼の立身は無からでなく、よく置かれた足場の上から始まった。」“他的成功并非始于无,而是始于铺得很好的立足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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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점The Lens視点视角
계획가와 행동가The Planner and the Doer計画家と行動家谋划者与行动者
이병철과 정주영Lee Byung-chul and Chung Ju-yung李秉喆と鄭周永李秉喆与郑周永
- 정주영이 맨손으로 밀어붙인 행동가였다면, 이병철은 표 위에서 이기는 계획가였다If Chung Ju-yung was the doer who pushed by hand, Lee was the planner who won on the spreadsheet鄭周永が素手で押し進めた行動家なら、李秉喆は表の上で勝つ計画家だった若郑周永是赤手推进的行动者,李秉喆便是在表格上取胜的谋划者
- 그는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넌다”는 말처럼, 오래 살피고 철저히 준비한 뒤에야 움직였다True to the saying “test even a stone bridge before crossing,” he studied long and prepared thoroughly before moving「石橋も叩いて渡る」の言葉通り、長く調べ徹底して備えてから動いた正如“石桥也要敲过再走”,他久经查考、周密准备后方才行动
- 이 데크는 대구의 작은 가게에서 반도체 제국까지, 다섯 막의 여정을 정직하게 따라간다This deck follows, honestly, the five-act journey from a small Daegu shop to a semiconductor empireこのデッキは大邱の小さな店から半導体帝国まで、五幕の旅を正直に辿る本演示诚实地追随从大邱小店到半导体帝国的五幕旅程
해설Note解説注解‘계획가’라는 상 역시 자서전과 삼성계 전기가 다듬은 초상임을 유념한다 — 특징으로 읽되 검증된 사실로 읽지 않는다.Remember the “planner” image is itself a portrait shaped by his memoir and Samsung-linked biography — read it as characterization, not audited fact.「計画家」という像も自伝やサムスン系の伝記が整えた肖像だと留意する — 特徴として読み、監査済みの事実としては読まない。须记“谋划者”之像亦是自传与三星系传记塑造的画像 — 作为特征来读,而非当作经审计的事实。
“한 사람은 손으로 지었고, 한 사람은 계획으로 이겼다.”“One built with his hands; the other won by his plan.”「一人は手で造り、一人は計画で勝った。」“一人以手建造,一人以谋取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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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부 · 계획가Part 1 · The Planner第1部 · 計画家第一部 · 谋划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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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획가The Planner計画家谋划者
제1부 · 유복한 출발, 뼈아픈 첫 실패, 작은 무역상Part 1 · A well-off start, a bitter first failure, a small trading shop第1部 · 裕福な出発、痛い初失敗、小さな貿易商第一部 · 富裕的起点、痛切的首败、小小的贸易行
제1부 · 계획가Part 1 · The Planner第1部 · 計画家第一部 · 谋划者
1910191019101910
천석꾼 집안의 막내아들Youngest Son of a Thousand-Seok House千石の家の末息子千石之家的幼子
경남 의령Uiryeong, South Gyeongsang慶南宜寧庆南宜宁
- 이병철은 1910년 경남 의령의 부유한 지주 집안에서 태어났다Lee Byung-chul was born in 1910 into a wealthy landowning family in Uiryeong, South Gyeongsang李秉喆は1910年、慶南宜寧の裕福な地主の家に生まれた李秉喆1910年生于庆尚南道宜宁的富裕地主之家
- 아버지는 약 천 석을 거두는 ‘천석꾼’이었다 — 당대로선 상당한 부농이었다His father was a “thousand-seok” landlord, reaping about 1,000 seok — a substantial rich farmer for the era父は約千石を収める「千石の主」だった — 当時としては相当な富農だ其父是收约千石的“千石之主”— 在当时是相当殷实的富农
- 가난이 아니라 안정된 풍요가, 그의 신중하고 장기적인 기질을 길렀다Not poverty but settled plenty shaped his cautious, long-term temperament貧しさでなく安定した豊かさが、彼の慎重で長期的な気質を育てた非贫穷而是安稳的富足,塑造了他谨慎而长远的气质
해설Note解説注解같은 시대의 정주영이 가난에서 출발한 것과의 대비가, 두 사람의 방식 차이를 이해하는 열쇠다.The contrast with the poverty-born Chung Ju-yung of the same era is a key to understanding their different methods.同時代の鄭周永が貧しさから出発したのとの対比が、二人の方式の違いを理解する鍵だ。与同代出身贫寒的郑周永之对比,是理解二人方式差异的钥匙。
“그의 첫 밑천은 배고픔이 아니라, 여유가 준 시간이었다.”“His first capital was not hunger, but the time that comfort afforded.”「彼の最初の元手は飢えでなく、余裕が与えた時間だった。」“他的第一笔本钱不是饥饿,而是宽裕给予的时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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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Schooling学び求学
서당에서 와세다까지From the Seodang to Waseda書堂から早稲田まで从书堂到早稻田
도쿄 유학, 그러나 중퇴Study in Tokyo, but no degree東京留学、しかし中退东京留学,却中途退学
- 어린 시절 한학을 익힌 뒤 서울의 중동학교를 거쳐, 1930년 도쿄 와세다대학에 들어갔다After classical Chinese studies as a child, he passed through Seoul’s Jungdong School and entered Waseda University in Tokyo in 1930幼少期に漢学を学び、ソウルの中東学校を経て、1930年東京の早稲田大学に入った幼时习汉学,经首尔中东学校,1930年入东京早稻田大学
- 정치경제를 공부했으나 건강(각기병)이 나빠져 이듬해 무렵 학위 없이 그만두었다He studied political economy but, worsening with beriberi, left around the next year without a degree政治経済を学んだが健康(脚気)が悪化し、翌年頃に学位なく中退した他攻读政治经济,却因健康(脚气病)恶化,翌年前后无学位而辍学
- 중퇴 연도는 자료마다 엇갈린다(1931년 설과 1934년 설) — 병이 원인이라는 점은 분명하다The year of withdrawal is disputed by sources (1931 vs 1934) — that illness was the cause is clear中退の年は資料により異なる(1931年説と1934年説) — 病が原因である点は明らかだ辍学年份各说不一(1931与1934之说)— 因病之点则明确
해설Note解説注解논쟁적 세부(연도 등)는 하나로 못박지 않고, 확실한 큰 줄기만 단정한다 — 이 데크의 원칙이다.We don’t pin down disputed details (like the year); we assert only the clear broad strokes — a principle of this deck.論争的な細部(年など)は一つに断定せず、確実な大筋だけを述べる — このデッキの原則だ。对有争议的细节(如年份)不作断定,只肯定确凿的大脉络 — 本演示之原则。
“그는 학위 대신, 세상을 읽는 눈을 얻어 돌아왔다.”“He came back with an eye for reading the world, in place of a diploma.”「彼は学位の代わりに、世を読む目を得て帰った。」“他没带回文凭,却带回了洞察世界的眼睛。”

제1부 · 계획가Part 1 · The Planner第1部 · 計画家第一部 · 谋划者
첫 사업First Venture初事業初创
물려받은 땅으로 벌인 첫 승부A First Bet with Inherited Land相続した土地での初勝負以继承之地下的第一注
1936년, 마산1936, Masan1936年、馬山1936年,马山
- 아버지가 나눠 준 약 300석 규모의 땅이, 그의 사업 밑천이 되었다About 300 seok of land his father divided out became his business capital父が分けた約300石の土地が、彼の事業の元手になった父亲分给的约300石田地,成了他的创业本钱
- 1936년 마산에서 정미소(협동정미소)를 열고, 빚을 얻어 땅 투기에도 손을 댔다In 1936 he opened a rice mill in Masan and, borrowing heavily, ventured into land speculation1936年馬山で精米所を開き、借金をして土地投機にも手を出した1936年他在马山开米厂,并举债涉足土地投机
- 한동안은 불어났으나, 그의 자서전에 따르면 상당한 규모까지 커졌다가 곧 위기를 맞는다For a while it grew — by his memoir, to a considerable scale — before crisis struckしばらくは膨らんだが、自伝によれば相当な規模まで大きくなった後、危機を迎える一时膨胀 — 据其自传曾扩至相当规模 — 旋即遭遇危机
해설Note解説注解초기 사업의 규모·수치는 대개 자서전(호암자전) 출처다 — ‘그의 말로는’이라는 단서를 붙여 읽는다.Figures for these early ventures mostly trace to his memoir — read them with the caveat “by his own account.”初期事業の規模・数字は多く自伝(湖巌自伝)出典だ — 「彼の言では」という但し書きを付けて読む。早期事业的规模与数字多出自自传(湖岩自传)— 应加“据他自述”之注来读。
“빌린 돈으로 벌인 첫 사업은, 가장 값비싼 교실이 되었다.”“A first venture run on borrowed money became the costliest classroom.”「借金で始めた初事業は、最も高くついた教室になった。」“以借款开办的第一桩生意,成了最昂贵的课堂。”

제1부 · 계획가Part 1 · The Planner第1部 · 計画家第一部 · 谋划者
첫 실패First Failure初失敗首败
전쟁이 부른 신용 경색A Credit Crunch Brought by War戦争が招いた信用収縮战争引发的信用紧缩
1937년, 모두 정리하다1937, liquidating everything1937年、全て整理1937年,尽数清盘
- 1937년 중일전쟁이 터지자 은행이 대출을 끊고 땅값이 폭락했다When the Second Sino-Japanese War broke out in 1937, banks cut lending and land prices crashed1937年に日中戦争が起こると銀行が融資を止め、地価が暴落した1937年中日战争爆发,银行断贷、地价暴跌
- 그는 모든 것을 정리했고, 자서전에 따르면 손에 남은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He liquidated everything and, by his memoir, was left with little彼は全てを整理し、自伝によれば手元に残ったものは僅かだった他清盘一切,据自传所剩无几
- 훗날 그는 이 실패가 신중함·타이밍·철저한 준비를 가르쳐 주었다고 회고했다He later recalled that this failure taught him caution, timing, and thorough preparation後に彼はこの失敗が慎重さ・タイミング・徹底した準備を教えたと回顧した他后来回忆,这次失败教会了他谨慎、时机与周密准备
해설Note解説注解‘실패가 교훈이 되었다’는 이 서사는 대체로 자서전이 다듬은 것이다 — 특징으로 받되 신화로 굳히지 않는다.This “failure became a lesson” narrative is mostly memoir-shaped — take it as characterization, not myth set in stone.「失敗が教訓になった」というこの物語は概ね自伝が整えたものだ — 特徴として受けとめ、神話に固めない。“失败化为教训”这一叙事,大体是自传所塑 — 作为特征接受,而非固化为神话。
“그는 첫 실패에서, 평생 팔 무기가 될 신중함을 벼려 냈다.”“From his first failure he forged the caution that would be his lifelong weapon.”「彼は初失敗から、生涯の武器となる慎重さを鍛えた。」“他从首败中锻出了一生受用的谨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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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Samsungサムスン三星
세 개의 별, 대구에서 뜨다Three Stars Rise in Daegu三つの星、大邱に昇る三颗星,升于大邱
삼성상회, 1938년Samsung Sanghoe, 1938三星商会、1938年三星商会,1938年
- 1938년 대구에서 무역상 ‘삼성상회’를 열었다 — ‘삼성’은 세 개의 별, 곧 크고 많고 영원히 빛난다는 뜻이다In 1938 in Daegu he opened the trading firm “Samsung Sanghoe” — “Samsung” means three stars: great, many, and forever bright1938年大邱で貿易商「三星商会」を開いた — 「三星」は三つの星、すなわち大きく多く永遠に輝くの意1938年他在大邱开设贸易行“三星商会”—“三星”意为三颗星:大、多、永远明亮
- 마른 생선·청과·밀가루를 거래하고 국수(별표 국수)를 만들어, 만주와 베이징으로 내보냈다It traded dried fish, produce, and flour and made noodles (the “Star” brand), exporting to Manchuria and Beijing干魚・青果・小麦粉を扱い麺(星印の麺)を作り、満州と北京へ送った经营干鱼·果蔬·面粉并制面(星牌面),外销至满洲与北京
- 거대 기업의 씨앗은, 이렇게 시장통의 작은 가게에서 뿌려졌다The seed of a giant enterprise was thus sown in a small shop in the marketplace巨大企業の種は、こうして市場の小さな店で蒔かれた巨型企业的种子,便这样播于市集的小店
해설Note解説注解창립일은 자료마다 3월 1일과 3월 22일로 갈리고, ‘세 개의 별’ 풀이도 뒷날의 해석이다 — 기념일·상징으로 받아들인다.The founding date splits by source (1 vs 22 March), and the “three stars” gloss is a later interpretation — take them as a commemorated date and symbol.創立日は資料により3月1日と3月22日に分かれ、「三つの星」の解釈も後年のもの — 記念日・象徴として受け取る。创立日各说分为3月1日与3月22日,“三星”之解亦为后世阐释 — 作为纪念日与象征来看待。
“세계적 기업의 이름 하나가, 마른 생선과 국수에서 시작되었다.”“The name of a world-class enterprise began with dried fish and noodles.”「世界的企業の名が、干魚と麺から始まった。」“一家世界级企业之名,始于干鱼与面条。”

제1부 · 계획가Part 1 · The Planner第1部 · 計画家第一部 · 谋划者
무역Trading貿易贸易
무역으로 정상에 다가서다Nearing the Top through Trade貿易で頂点に近づく以贸易逼近顶峰
삼성물산, 1948년Samsung Mulsan, 1948三星物産、1948年三星物产,1948年
- 광복 후 1948년, 서울에서 무역회사 삼성물산공사를 세웠다 — 동업자 조홍제와 함께였다After liberation, in 1948 he founded the trading company Samsung Mulsan Gongsa in Seoul, with his partner Cho Hong-je解放後1948年、ソウルで貿易会社三星物産公社を設立した — 共同経営者の趙洪済と共に光复后1948年,他在首尔创立贸易公司三星物产公社 — 与合伙人赵洪济一同
- 삼성물산은 곧 한국의 손꼽히는 무역회사로 성장했다Samsung Mulsan soon grew into one of Korea’s leading trading firms三星物産はまもなく韓国屈指の貿易会社に成長した三星物产很快成长为韩国数一数二的贸易公司
- 아직 제조업이 아니라 무역이 그의 본령이었다 — 공장은 그다음 이야기다His domain was still trade, not manufacturing — the factories came nextまだ製造業でなく貿易が彼の本領だった — 工場はその次の話だ彼时他的本行仍是贸易而非制造 — 工厂是后话
해설Note解説注解동업자 조홍제는 뒷날 효성그룹을 세운다 — 초기 삼성은 여러 사람의 자본과 관계 위에 섰다.His partner Cho Hong-je would later found the Hyosung group — early Samsung stood on several people’s capital and ties.共同経営者の趙洪済は後に暁星グループを設立する — 初期のサムスンは複数の人の資本と関係の上に立った。合伙人赵洪济后来创立晓星集团 — 早期三星立于多人的资本与关系之上。
“그는 물건을 만들기 전에, 먼저 세상의 물길을 읽었다.”“Before making goods, he first read the world’s currents of trade.”「彼は物を作る前に、まず世の商いの流れを読んだ。」“他在造物之前,先读懂了世上的商流。”

제1부 · 계획가Part 1 · The Planner第1部 · 計画家第一部 · 谋划者
전쟁과 재기War & Rebuild戦争と再起战争与重振
무너지고, 부산에서 다시 일어서다Ruined, and Risen Again in Busan崩れ、釜山で再び立つ崩塌,又在釜山重起
1950 → 19511950 → 19511950 → 19511950 → 1951
- 1950년 6·25 전쟁이 서울의 사업을 쓸어버렸다The 1950 Korean War swept away his Seoul business1950年の朝鮮戦争がソウルの事業を押し流した1950年朝鲜战争卷走了他在首尔的事业
- 그는 부산으로 피란해 1951년 삼성물산을 다시 세우고, 전시 무역으로 크게 벌었다He fled to Busan, re-founded Samsung Mulsan in 1951, and profited heavily on wartime trade彼は釜山に避難し1951年に三星物産を再建、戦時貿易で大きく稼いだ他避难釜山,1951年重建三星物产,凭战时贸易大获其利
- 그 전시 자본이, 곧 무역에서 제조로 넘어가는 도약의 밑천이 되었다That wartime capital became the springboard for the leap from trade into manufacturingその戦時資本が、貿易から製造へ跳ぶ元手になった那笔战时资本,成了从贸易跃向制造的本钱
해설Note解説注解전시 이윤(고철 수출 등)은 재건의 밑천이자, 혼란기 부의 축적이라는 양면을 지닌다 — 미화하지 않는다.Wartime profit (e.g. scrap-metal exports) was both rebuilding capital and wealth amassed in chaos — we don’t gloss it.戦時利益(スクラップ輸出など)は再建の元手であり、混乱期の富の蓄積でもある — 美化しない。战时利润(如废铁出口)既是重建之本,也是乱世的财富积累 — 我们不加美化。
“전쟁은 그의 사업을 부수고, 동시에 다음 사업의 자본을 쥐여 주었다.”“The war destroyed his business and, at once, handed him the capital for the next.”「戦争は彼の事業を壊し、同時に次の事業の資本を握らせた。」“战争摧毁了他的生意,也同时把下一桩生意的资本塞进他手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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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부 · 설탕과 모직Part 2 · Sugar and Wool第2部 · 砂糖と羊毛第二部 · 糖与羊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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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탕과 모직Sugar and Wool砂糖と羊毛糖与羊毛
제2부 · 무역에서 제조로, 그리고 최대 재벌로Part 2 · From trade to manufacturing, and to the top chaebol第2部 · 貿易から製造へ、そして最大財閥へ第二部 · 从贸易到制造,及至最大财阀
제2부 · 설탕과 모직Part 2 · Sugar and Wool第2部 · 砂糖と羊毛第二部 · 糖与羊毛
전환The Pivot転換转向
무역상이 공장을 짓기로 하다A Trader Decides to Build Factories貿易商が工場を建てると決める贸易商决意建厂
계획가의 방향 전환The planner’s strategic turn計画家の方向転換谋划者的战略转向
- 전쟁으로 번 자본을 손에 쥔 그는, 사고파는 무역을 넘어 직접 ‘만드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With wartime capital in hand, he turned from buying and selling toward making things himself戦争で得た資本を手にした彼は、売買の貿易を越え自ら「作る」方へ舵を切った手握战时资本的他,从买卖贸易转向亲手“制造”
- 수입품을 국내 생산으로 대체하는 ‘수입대체’가, 그가 오래 살핀 끝에 고른 길이었다Import substitution — replacing imports with domestic production — was the path he chose after long study輸入品を国内生産で代える「輸入代替」が、長く調べた末に選んだ道だった以国产替代进口的“进口替代”,是他久经考量后所选之路
- 한 번의 거래보다 오래가는 공장을 세우는 것 — 그것이 계획가의 셈법이었다Building a lasting factory over a one-off deal — that was the planner’s calculus一度の取引より長く続く工場を建てる — それが計画家の計算だった建起长久的工厂而非一次交易 — 这便是谋划者的算计
해설Note解説注解무역에서 제조로의 전환은 개인의 결단이자, 전후 국가의 수입대체 산업화 정책과 맞물린 선택이었다.The pivot from trade to manufacturing was both a personal decision and one aligned with the postwar state’s import-substitution policy.貿易から製造への転換は個人の決断であり、戦後国家の輸入代替産業化政策と噛み合った選択だった。从贸易到制造的转向,既是个人决断,也是与战后国家进口替代工业化政策相契合的选择。
“그는 이문을 남기는 상인에서, 자산을 남기는 산업가로 스스로를 바꾸었다.”“He remade himself from a merchant who left profit into an industrialist who left assets.”「彼は利を残す商人から、資産を残す産業家へ自らを変えた。」“他把自己从留利的商人,改造为留资的产业家。”

제2부 · 설탕과 모직Part 2 · Sugar and Wool第2部 · 砂糖と羊毛第二部 · 糖与羊毛
제일제당Cheil Jedang第一製糖第一制糖
설탕, 첫 공장의 하얀 결정Sugar: the White Crystal of a First Factory砂糖、初工場の白い結晶糖,第一座工厂的白色结晶
1953년, 부산1953, Busan1953年、釜山1953年,釜山
- 1953년 부산에 제일제당을 세워, 무역상이던 그가 처음으로 ‘만드는 사람’이 되었다In 1953 he founded Cheil Jedang in Busan, and the trader became, for the first time, a maker1953年釜山に第一製糖を設立し、貿易商だった彼が初めて「作る人」になった1953年他在釜山创立第一制糖,昔日的贸易商首次成为“制造者”
- 수입에 의존하던 설탕을 국내에서 정제한, 전후 한국 최초의 대표적 수입대체 공장이었다It was one of postwar Korea’s first landmark import-substitution plants, refining at home the sugar once imported輸入に頼っていた砂糖を国内で精製した、戦後韓国初の代表的な輸入代替工場だった它是战后韩国首批标志性的进口替代工厂,将昔日依赖进口的糖在本土精炼
- 그해 11월 첫 국산 설탕이 쏟아져 나왔다That November, the first domestically refined sugar poured outその年の11月、初の国産砂糖が出てきた当年11月,首批国产糖倾泻而出
해설Note解説注解제일제당은 훗날(1990년대) 삼성에서 분리되어 오늘날의 CJ그룹이 된다.Cheil Jedang would later (1990s) split from Samsung to become today’s CJ Group.第一製糖は後(1990年代)にサムスンから分離し、今日のCJグループになる。第一制糖后来(1990年代)从三星分出,成为今日的CJ集团。
“하얀 설탕 한 봉지가, 무역상을 제조업가로 바꾸어 놓았다.”“A single bag of white sugar turned a trader into a manufacturer.”「白い砂糖一袋が、貿易商を製造業家に変えた。」“一袋白糖,把贸易商变成了制造业家。”

제2부 · 설탕과 모직Part 2 · Sugar and Wool第2部 · 砂糖と羊毛第二部 · 糖与羊毛
제일모직Cheil Mojik第一毛織第一毛织
국산 양복지의 자부심The Pride of Home-Made Suiting国産スーツ地の誇り国产西装料的自豪
1954년, 대구1954, Daegu1954年、大邱1954年,大邱
- 1954년 대구에 제일모직을 세워, 값비싼 수입 양복지(‘마카오 양복’)를 국산으로 대체하려 했다In 1954 he founded Cheil Mojik in Daegu to replace costly imported suiting (“Macao cloth”) with a domestic product1954年大邱に第一毛織を設立し、高価な輸入スーツ地(「マカオ服」)を国産で代えようとした1954年他在大邱创立第一毛织,欲以国产替代昂贵的进口西装料(“澳门料”)
- 제일모직은 곧 한국 최대의 모직 공장이 되었다Cheil Mojik soon became Korea’s largest woolen mill第一毛織はまもなく韓国最大の毛織工場になった第一毛织很快成为韩国最大的毛纺厂
- 설탕에 이어 모직까지, 그는 생활필수품의 국산화로 기반을 넓혀 갔다After sugar, now wool — he broadened his base by localizing everyday essentials砂糖に続き毛織まで、彼は生活必需品の国産化で基盤を広げた继糖之后又添毛织,他以生活必需品的国产化拓宽根基
해설Note解説注解창립일 세부(9월 1일과 15일)는 엇갈린다 — 큰 사실(1954년 대구, 최대 모직)만 단정한다.The founding-day detail (1 vs 15 September) is disputed — we assert only the broad facts (1954, Daegu, largest woolen mill).創立日の細部(9月1日と15日)は分かれる — 大きな事実(1954年大邱、最大の毛織)だけを述べる。创立日细节(9月1日与15日)说法不一 — 只肯定大事实(1954、大邱、最大毛纺)。
“그는 수입품이 있던 자리마다, 국산 공장을 하나씩 세워 넣었다.”“Wherever an import stood, he set a domestic factory in its place, one by one.”「彼は輸入品のあった所ごとに、国産工場を一つずつ据えた。」“凡有进口品之处,他便一座座建起国产工厂。”

제2부 · 설탕과 모직Part 2 · Sugar and Wool第2部 · 砂糖と羊毛第二部 · 糖与羊毛
삼백Three Whites三白三白
하얀 세 가지의 시대The Age of Three White Things白い三つの時代三样白色之物的时代
삼백산업The “three whites”三白産業三白产业
- 설탕·밀가루·면 — 1950년대 한국 경공업을 이끈 이 하얀 세 가지를 ‘삼백산업’이라 불렀다Sugar, flour, and cotton — these three white things that drove 1950s Korean light industry were called the “three whites”砂糖・小麦粉・綿 — 1950年代の韓国軽工業を率いたこの白い三つを「三白産業」と呼んだ糖·面粉·棉 — 引领1950年代韩国轻工业的这三样白物,被称为“三白产业”
- 삼성은 그 한복판에 있었다 — 설탕과 모직이 그룹의 뼈대를 세웠다Samsung stood at its center — sugar and wool built the group’s frameサムスンはその中心にいた — 砂糖と毛織がグループの骨格を築いた三星正处其中心 — 糖与毛织搭起了集团的骨架
- 전후 궁핍한 시장에서, 이 생필품 국산화는 곧 막대한 이익으로 이어졌다In a poor postwar market, localizing these essentials meant enormous profit戦後の乏しい市場で、この必需品の国産化は莫大な利益になった在战后匮乏的市场,这些必需品的国产化带来了巨额利润
해설Note解説注解다음 장에서 이 이익이 순수한 안목만의 결과가 아니었음을 정직하게 본다.The next slide looks honestly at how this profit was not the fruit of vision alone.次章でこの利益が純粋な眼力だけの結果でなかったことを正直に見る。下一页诚实审视这份利润并非仅凭眼光之果。
“가장 하얀 것들이, 가장 큰 이윤을 남겼다.”“The whitest things left the largest profits.”「最も白いものが、最も大きな利益を残した。」“最白之物,留下最大之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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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직한 장부The Honest Ledger正直な帳簿诚实的账本
안목만으로 번 것이 아니다Not Earned by Vision Alone眼力だけで稼いだのではない并非仅凭眼光赚得
특혜라는 또 하나의 원천Privilege as another source特恵というもう一つの源特惠这另一来源
- 삼백산업의 큰 이익은 원조 물자, 수입 허가, 값싸게 배정된 외환, 관세 보호에도 크게 기댔다The big profits of the “three whites” leaned heavily on aid materials, import licenses, cheaply allocated foreign exchange, and tariff protection三白産業の大きな利益は援助物資、輸入許可、安く配分された外貨、関税保護にも大きく依存した三白产业的巨利,也大量依赖援助物资、进口许可、廉价配给的外汇与关税保护
- 즉 국가와의 관계에서 나온 ‘특혜의 지대’가, 기업가적 실력과 나란히 이익을 만들었다That is, “rents of privilege” from ties with the state made profit alongside entrepreneurial skillつまり国家との関係から出た「特恵の地代」が、企業家的実力と並んで利益を生んだ即源自与国家关系的“特惠之租”,与企业家的实力并肩创造了利润
- 이 사실을 지우면 실력을 과대평가하고, 이 사실만 보면 실력을 지운다 — 둘을 함께 본다Erase this and we overrate his skill; see only this and we erase it — we hold bothこの事実を消せば実力を過大評価し、これだけ見れば実力を消す — 両方を見る抹去此事实便高估其能力,只看此事实又抹去其能力 — 二者兼看
해설Note解説注解개발국가 시기 한국 재벌 성장의 공통 구조다 — 이병철 개인의 결함이라기보다 시대의 조건이자, 그 조건을 가장 잘 활용한 능력이다.This is the common structure of chaebol growth in the developmental state — less a personal flaw than an era’s condition, and the skill of exploiting it best.開発国家期の韓国財閥成長の共通構造だ — 個人の欠陥というより時代の条件であり、その条件を最もよく活用した能力だ。这是开发型国家时期韩国财阀成长的共同结构 — 与其说是个人缺陷,不如说是时代条件,及最善用此条件的能力。
“그의 성공은 실력과 특혜라는 두 다리로 서 있었다.”“His success stood on two legs — skill and privilege.”「彼の成功は実力と特恵という二本の脚で立っていた。」“他的成功立于两条腿 — 实力与特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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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과 관제탑Finance & Control Tower金融と管制塔金融与指挥塔
돈과 조직을 손에 쥐다Taking Money and Organization in Hand金と組織を手にする把金钱与组织握于手中
1958년 전후Around 19581958年前後1958年前后
- 1958년 안국화재(→삼성화재)를 인수하며 금융업에 발을 들였고, 은행 지분도 사들였다In 1958 he entered finance by acquiring Ankuk Fire & Marine (→ Samsung Fire & Marine), and bought bank stakes too1958年、安国火災(→サムスン火災)を買収し金融業に入り、銀行株も買い集めた1958年他收购安国火灾(→三星火灾)进入金融业,并购入银行股份
- 제조·무역·금융을 아우르며, 계열사를 총괄하는 기획 조직(‘관제탑’)을 일찍부터 두었다Spanning manufacturing, trade, and finance, he set up early a planning body (a “control tower”) to steer the affiliates製造・貿易・金融を束ね、系列会社を統括する企画組織(「管制塔」)を早くから置いた横跨制造·贸易·金融,他很早便设立统辖各子公司的企划组织(“指挥塔”)
- 전략을 한곳에서 짜고 실행을 배분하는 이 시스템이, 계획가 이병철의 서명 같은 방식이었다This system — planning strategy in one place and allotting execution — was the signature method of Lee the planner戦略を一箇所で練り実行を配分するこのシステムが、計画家李秉喆の署名のような方式だった在一处谋略、分配执行的这一系统,正是谋划者李秉喆的标志性方式
해설Note解説注解이 ‘기획·관리’ 중심 경영은 훗날 삼성 특유의 시스템 문화로 이어진다 — 강점이자, 집중된 권력의 그림자이기도 하다.This “plan-and-control” management became Samsung’s distinctive system culture — a strength, and also the shadow of concentrated power.この「企画・管理」中心の経営は後にサムスン特有のシステム文化に続く — 強みであり、集中した権力の影でもある。这种以“企划·管理”为中心的经营,日后延续为三星特有的系统文化 — 是长处,也是权力集中的阴影。
“그는 사업을 벌이기 전에, 사업을 다스릴 조직부터 지었다.”“Before spreading his businesses, he first built the organization to govern them.”「彼は事業を広げる前に、事業を治める組織から築いた。」“他在铺开事业之前,先建起了治理事业的组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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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대 재벌Top Chaebol最大財閥最大财阀
1960년, 나라에서 가장 큰 기업1960: the Nation’s Largest Enterprise1960年、国内最大の企業1960年,全国最大的企业
그룹의 완성The group takes shapeグループの完成集团的成型
- 1950년대 말에 이르자 삼성은 한국을 대표하는 최대 재벌로 꼽혔다By the late 1950s Samsung was reckoned Korea’s leading, largest chaebol1950年代末にはサムスンは韓国を代表する最大財閥に数えられた到1950年代末,三星已被视为韩国最具代表性的最大财阀
- 무역에서 시작해 설탕·모직·금융까지, 하나의 가문이 지배하는 거대 기업집단이 완성되어 갔다From trade to sugar, wool, and finance, a vast family-controlled conglomerate was taking form貿易から始まり砂糖・毛織・金融まで、一家門が支配する巨大企業集団が形になっていった从贸易到糖·毛织·金融,一个由家族掌控的庞大企业集团逐渐成型
- ‘재벌’이라는 한국 특유의 기업 형태가, 이렇게 그의 손에서 하나의 완성형을 얻었다The distinctively Korean form of the “chaebol” thus found a fully realized shape in his hands「財閥」という韓国特有の企業形態が、こうして彼の手で一つの完成形を得た“财阀”这一韩国特有的企业形态,就这样在他手中成就了一个完成形态
해설Note解説注解재벌의 경제력 집중은 한국 경제의 성장 동력이자 오랜 논쟁거리다 — 이 데크는 그 양면을 함께 둔다.The chaebol’s concentration of economic power is both an engine of Korean growth and a long controversy — this deck keeps both sides.財閥の経済力集中は韓国経済の成長動力であり長い論争でもある — このデッキは両面を併せ置く。财阀的经济力集中,既是韩国经济的增长动力,也是长久的争议 — 本演示并置两面。
“그는 회사 하나가 아니라, 회사들의 제국을 설계했다.”“He designed not a company, but an empire of companies.”「彼は一つの会社でなく、会社たちの帝国を設計した。」“他设计的不是一家公司,而是一个公司之帝国。”

03

제3부 · 오점과 권력Part 3 · The Stain and the State第3部 · 汚点と権力第三部 · 污点与权力
03
오점과 권력The Stain and the State汚点と権力污点与权力
제3부 · 쿠데타, 언론, 그리고 1966년의 얼룩Part 3 · A coup, the media, and the stain of 1966第3部 · クーデター、言論、そして1966年の汚点第三部 · 政变、媒体,与1966年的污点
제3부 · 오점과 권력Part 3 · The Stain and the State第3部 · 汚点と権力第三部 · 污点与权力
쿠데타The Coupクーデター政变
‘부정축재자’로 몰리다Branded an “Illicit Accumulator”「不正蓄財者」とされる被扣上“非法敛财者”
1961년19611961年1961年
- 1961년 박정희의 군사 쿠데타 직후, 이병철은 ‘부정축재자’로 지목되었다Right after Park Chung-hee’s 1961 military coup, Lee was named an “illicit wealth accumulator”1961年、朴正煕の軍事クーデター直後、李秉喆は「不正蓄財者」と名指しされた1961年朴正熙军事政变后不久,李秉喆被指为“非法敛财者”
- 그는 1950년대에 사들인 은행 지분을 내놓아야 했다He had to give up the bank shares he had bought in the 1950s彼は1950年代に買った銀行株を手放さねばならなかった他不得不交出1950年代购入的银行股份
- 그러나 곧 군사정권과 타협하고, 그 산업화 드라이브에 올라탔다But he soon reached an accommodation with the junta and rode its industrialization driveだがまもなく軍事政権と妥協し、その産業化ドライブに乗った但他很快与军政权妥协,搭上了其工业化的快车
해설Note解説注解재벌과 권위주의 정권의 밀착은 한국 산업화의 그늘이다 — 이병철은 그 관계를 가장 능란하게 다룬 인물이었다.The chaebol’s closeness to authoritarian regimes is a shadow of Korean industrialization — Lee handled that relationship most adeptly.財閥と権威主義政権の密着は韓国産業化の影だ — 李秉喆はその関係を最も巧みに扱った人物だった。财阀与威权政权的紧密,是韩国工业化的阴影 — 李秉喆是最善于处理这一关系的人。
“권력이 바뀔 때마다, 재벌은 굴복과 협력 사이에서 셈을 해야 했다.”“Each time power changed, the chaebol had to calculate between submission and collaboration.”「権力が変わるたび、財閥は屈服と協力の間で計算せねばならなかった。」“每逢权力更替,财阀便须在屈服与合作之间盘算。”

제3부 · 오점과 권력Part 3 · The Stain and the State第3部 · 汚点と権力第三部 · 污点与权力
언론The Media言論媒体
방송과 신문을 손에 넣다Taking a Broadcaster and a Newspaper放送と新聞を手にする将电视台与报纸收入手中
TBC와 중앙일보TBC and the JoongAng IlboTBCと中央日報TBC与中央日报
- 1964년 동양방송(TBC)을 열고, 1965년 중앙일보를 창간했다In 1964 he launched Tongyang Broadcasting (TBC), and in 1965 founded the JoongAng Ilbo newspaper1964年に東洋放送(TBC)を開き、1965年に中央日報を創刊した1964年他创办东洋广播(TBC),1965年创刊《中央日报》
- 거대 기업이 방송과 신문까지 거느리며, 산업 권력과 여론 권력이 한 손에 모였다A giant enterprise now held broadcasting and press too — industrial power and the power over opinion gathered in one hand巨大企業が放送や新聞まで抱え、産業権力と世論権力が一手に集まった巨型企业更掌握广播与报纸,产业权力与舆论权力汇于一手
- 이 결합은 곧, 자신에게 닥칠 위기의 무대이자 변수가 된다This combination would soon become the stage — and a variable — of the crisis about to strike himこの結合はまもなく、自らに迫る危機の舞台であり変数になる这一结合不久便成了即将降临之危机的舞台与变数
해설Note解説注解TBC는 1980년 신군부의 언론 통폐합으로 KBS에 강제 통합된다 — 언론과 권력의 관계가 다시 뒤집힌 사건이다.TBC was forcibly merged into KBS in the 1980 press consolidation — another turn in the relationship of media and power.TBCは1980年の新軍部による言論統廃合でKBSに強制統合される — 言論と権力の関係が再び覆った出来事だ。TBC在1980年新军部的媒体整并中被强制并入KBS — 是媒体与权力关系再度反转之事。
“한 손에 공장을, 다른 손에 마이크를 쥔다는 것은 위험한 균형이었다.”“To hold a factory in one hand and a microphone in the other was a dangerous balance.”「一手に工場を、もう一手にマイクを握ることは危うい均衡だった。」“一手握工厂、一手握话筒,是一种危险的平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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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수 사건The Smuggling密輸事件走私案
건설 자재로 위장한 사카린Saccharin Disguised as Building Materials建設資材に偽装したサッカリン伪装成建材的糖精
1966년, 한국비료1966, Hankook Fertilizer1966年、韓国肥料1966年,韩国肥料
- 1966년, 삼성 계열 한국비료가 울산 공장을 지으며 사카린 원료 약 55톤을 건설 자재로 위장해 밀수하다 적발되었다In 1966, Samsung’s Hankook Fertilizer, building an Ulsan plant, was caught smuggling about 55 tons of saccharin raw material disguised as construction materials1966年、サムスン系の韓国肥料が蔚山工場建設に際し、サッカリン原料約55トンを建設資材に偽装し密輸して摘発された1966年,三星旗下韩国肥料在建蔚山工厂时,将约55吨糖精原料伪装成建材走私而被查获
- 몰래 되팔아 이익을 챙기려던, 대기업의 조직적 밀수였다It was an organized smuggling by a big enterprise, meant to resell for illicit profit密かに転売し利益を得ようとした、大企業の組織的密輸だった那是一桩意在私自转卖牟利的大企业有组织走私
- 경향신문의 보도로 세상에 드러나며, 온 나라를 뒤흔든 대형 스캔들이 되었다Exposed by a Kyunghyang Shinmun report, it became a huge scandal that shook the whole country京郷新聞の報道で表沙汰になり、国中を揺るがす大スキャンダルになった经《京乡新闻》报道曝光,成为震动全国的大丑闻
해설Note解説注解이 사건은 이병철 서사의 최대 오점이다 — 각주가 아니라 정면으로 다룬다.This is the greatest stain in Lee’s story — we treat it head-on, not as a footnote.この事件は李秉喆の物語の最大の汚点だ — 脚注でなく正面から扱う。此案是李秉喆叙事中最大的污点 — 我们正面处理,而非作为脚注。
“가장 정교한 계획가의 이름에도, 지울 수 없는 얼룩이 남았다.”“Even on the name of the most meticulous planner, an indelible stain remained.”「最も緻密な計画家の名にも、消せぬ汚点が残った。」“即便是最缜密的谋划者之名,也留下了抹不去的污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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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물 투척The Protest汚物投擲投粪
국회에 날아든 오물Filth Hurled in the Assembly国会に飛んだ汚物飞入国会的秽物
1966년 9월, 회사를 국가에 넘기다Sept 1966, the company handed to the state1966年9月、会社を国家に渡す1966年9月,将公司交予国家
- 분노가 폭발한 그해 9월, 무소속 의원 김두한이 국회 본회의장에서 국무위원들에게 오물을 뿌렸다That September, with anger boiling over, independent lawmaker Kim Doo-han flung human waste at cabinet ministers on the Assembly floor怒りが爆発したその9月、無所属議員の金斗漢が国会本会議場で国務委員に汚物を撒いた怒火沸腾的那年9月,无党籍议员金斗汉在国会全会场向国务委员泼洒秽物
- 같은 날 이병철은 한국비료를 국가에 ‘헌납’하고, 경영·언론·교육 사업에서 물러나겠다고 발표했다The same day, Lee announced he would “donate” Hankook Fertilizer to the state and withdraw from management, media, and education同日、李秉喆は韓国肥料を国家に「献納」し、経営・言論・教育事業から退くと発表した同日,李秉喆宣布将韩国肥料“献纳”国家,并退出经营·媒体·教育事业
- 그러나 ‘헌납’이라는 말은 미화다 — 그것은 기소 위협 아래 강요된 반납에 가까웠다But “donate” is a euphemism — it was closer to a surrender coerced under the threat of prosecutionだが「献納」という言葉は美化だ — それは起訴の脅威の下で強いられた返上に近かった但“献纳”一词是美化 — 那更近于起诉威胁下被迫的交还
해설Note解説注解김두한은 독립운동가 김좌진의 아들이자 옛 협객 출신 의원으로, 이 항의는 ‘국회 오물 투척 사건’으로 불린다.Kim Doo-han, son of independence fighter Kim Jwa-jin and a former street-fighter turned lawmaker, made the protest known as the “Assembly filth-throwing incident.”金斗漢は独立運動家金佐鎮の息子で元侠客出身の議員であり、この抗議は「国会汚物投擲事件」と呼ばれる。金斗汉是独立运动家金佐镇之子、出身旧侠客的议员,这次抗议被称为“国会投粪事件”。
“그 ‘기부’는 관대함이 아니라, 벼랑 끝에서 치른 대가였다.”“That ‘gift’ was not generosity, but a price paid at the edge of a cliff.”「その『寄付』は寛大さでなく、崖っぷちで払った代価だった。」“那‘捐赠’不是慷慨,而是悬崖边付出的代价。”

제3부 · 오점과 권력Part 3 · The Stain and the State第3部 · 汚点と権力第三部 · 污点与权力
대가The Cost代価代价
감옥에 간 아들, 흔들린 승계A Son in Prison, a Shaken Succession獄に行った息子、揺らいだ承継入狱的儿子,动摇的传承
정직하게 읽기Reading it honestly正直に読む诚实解读
- 책임을 지고 차남 이창희가 구속·수감되었고, 이병철 자신은 기소를 면했다Taking responsibility, second son Lee Chang-hee was arrested and jailed, while Lee himself avoided indictment責任を取り次男の李昌熙が拘束・収監され、李秉喆自身は起訴を免れた次子李昌熙承担责任被捕入狱,李秉喆本人则免于起诉
- 그는 약 2년 뒤 경영에 복귀했다 — 물러남은 한시적이었다He returned to management about two years later — the withdrawal was temporary彼は約2年後に経営に復帰した — 退場は一時的だった约两年后他重返经营 — 引退只是暂时
- 밀수 대금이 정치자금으로 흘러갔다는 의혹은 널리 회자되나, 끝내 명확히 입증되지는 않았다Allegations that the smuggling proceeds flowed into political funds are widely repeated but were never conclusively proven密輸代金が政治資金に流れたという疑惑は広く語られるが、ついに明確に立証されなかった走私所得流入政治资金的疑云广为流传,却始终未获确证
해설Note解説注解입증되지 않은 의혹은 의혹으로, 확인된 사실은 사실로 구분한다 — 스캔들조차 정확히 다뤄야 한다.We separate unproven allegation from confirmed fact — even a scandal must be handled precisely.立証されない疑惑は疑惑として、確認された事実は事実として区別する — スキャンダルすら正確に扱う。未证之疑归疑、已核之实归实 — 即便是丑闻也须精确对待。
“가장 무거운 값은 회사가 아니라, 감옥에 간 아들과 무너진 신뢰였다.”“The heaviest price was not the company, but a son in prison and broken trust.”「最も重い代価は会社でなく、獄に行った息子と崩れた信頼だった。」“最沉重的代价不是公司,而是入狱的儿子与崩塌的信任。”

제3부 · 오점과 권력Part 3 · The Stain and the State第3部 · 汚点と権力第三部 · 污点与权力
무노조No Union無労組无工会
노동조합 없는 회사A Company Without Unions労働組合のない会社没有工会的公司
무노조 경영The no-union doctrine無労組経営无工会经营
- 삼성은 오랫동안 노동조합을 두지 않는 ‘무노조 경영’으로 유명했고, 그 방침은 창업주에게서 비롯되었다고 전한다Samsung was long famous for its “no-union management,” a doctrine said to trace to the founder himselfサムスンは長く労働組合を置かない「無労組経営」で知られ、その方針は創業者に由来すると伝わる三星长期以不设工会的“无工会经营”著称,据传此方针源自创始人本人
- 이 방침은 수십 년간 노조 결성을 막는 관행으로 이어졌다This doctrine became a decades-long practice of blocking union formationこの方針は数十年にわたり労組結成を阻む慣行になった此方针延续为数十年阻碍工会成立的做法
- 삼성이 무노조 방침의 공식 폐기를 선언한 것은 2020년에 이르러서였다Only in 2020 did Samsung formally renounce the no-union policyサムスンが無労組方針の公式撤回を宣言したのは2020年に至ってだった直到2020年,三星才正式宣布放弃无工会方针
해설Note解説注解특정 인용문(‘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은 일화적 표현이므로, 어록이 아니라 정책 자체를 사실로 기록한다.A specific quote (“not while there is breath in me…”) is anecdotal, so we record the policy itself as fact, not the exact wording.特定の引用(「私の目に土が入る前は…」)は逸話的なので、語録でなく政策自体を事実として記録する。某句引语(“除非我入土……”)属轶事,故记录政策本身为事实,而非确切措辞。
“일류 기술을 좇은 회사가, 가장 오래 미룬 것은 노동자의 목소리였다.”“The company that chased first-rate technology deferred longest the voice of its workers.”「一流技術を追った会社が、最も長く先送りしたのは労働者の声だった。」“追逐一流技术的公司,最久拖延的却是劳动者的声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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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귀The Return復帰复出
물러났다 돌아온 계획가The Planner Who Stepped Back and Returned退いて戻った計画家退而复归的谋划者
다음 승부를 준비하며Preparing the next bet次の勝負に備えて为下一注做准备
- 스캔들의 폭풍이 지나간 뒤, 그는 다시 경영의 중심으로 돌아왔다After the storm of scandal passed, he returned to the center of managementスキャンダルの嵐が過ぎた後、彼は再び経営の中心に戻った丑闻的风暴过后,他重回经营的中心
- 오점은 남았지만, 그의 전략적 야망은 꺾이지 않았다The stain remained, but his strategic ambition was undimmed汚点は残ったが、彼の戦略的野心は折れなかった污点犹存,但他的战略雄心未减
- 그리고 그는, 인생에서 가장 크고 무모해 보이는 마지막 승부를 준비하고 있었다And he was preparing the largest, most reckless-seeming last bet of his lifeそして彼は、人生で最も大きく無謀に見える最後の勝負を準備していた而他,正在筹备一生中最大、看来最鲁莽的最后一注
해설Note解説注解스캔들과 반도체 도약이 몇 해 사이에 겹친다 — 한 인물 안에 오점과 비전이 공존했음을 잊지 않는다.Scandal and the semiconductor leap fall within a few years — we do not forget that stain and vision coexisted in one man.スキャンダルと半導体跳躍が数年の間に重なる — 一人の中に汚点とビジョンが共存したことを忘れない。丑闻与半导体跃升相隔仅数年 — 我们不忘一个人身上污点与远见并存。
“얼룩이 그를 멈추게 하지는 못했다 — 그는 이미 다음 판을 보고 있었다.”“The stain could not stop him — he was already looking at the next game.”「汚点は彼を止められなかった — 彼はもう次の盤を見ていた。」“污点未能让他止步 — 他已在看下一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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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부 · 반도체라는 도박Part 4 · The Bet on Chips第4部 · 半導体という賭け第四部 · 半导体这场赌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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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라는 도박The Bet on Chips半導体という賭け半导体这场赌注
제4부 · 일흔셋의 계획가가 던진 마지막 승부수Part 4 · The last gamble of a 73-year-old planner第4部 · 73歳の計画家が投じた最後の勝負手第四部 · 73岁谋划者投下的最后赌注
제4부 · 반도체라는 도박Part 4 · The Bet on Chips第4部 · 半導体という賭け第四部 · 半导体这场赌注
전자Electronics電子电子
먼저 텔레비전, 그다음 반도체First Televisions, Then Chipsまずテレビ、次に半導体先电视,后半导体
삼성전자, 1969년Samsung Electronics, 1969サムスン電子、1969年三星电子,1969年
- 1969년 삼성전자를 세웠지만, 처음 만든 것은 반도체가 아니라 흑백텔레비전과 가전이었다He founded Samsung Electronics in 1969, but its first products were not chips — black-and-white TVs and appliances1969年サムスン電子を設立したが、最初に作ったのは半導体でなく白黒テレビと家電だった1969年他创立三星电子,但最初生产的不是芯片,而是黑白电视与家电
- 1974년 삼성은 한국반도체 지분을 사들여 작은 발판을 마련했는데, 이 초기 인수는 흔히 아들 이건희의 개인적 결단으로 전한다In 1974 Samsung took a stake in Korea Semiconductor — a small toehold toward chips, though that early purchase is often credited to his son Lee Kun-hee’s personal initiative1974年、サムスンは韓国半導体の株を取得し小さな足場を得たが、この初期の買収はしばしば息子・李健熙の個人的決断として伝えられる1974年三星购入韩国半导体股份,留下小小的立足点;不过这笔早期收购常被归于其子李健熙的个人决断
- 즉 반도체는 어느 날 갑자기가 아니라, 오래 준비된 계획의 도착점이었다So the chips were not sudden, but the destination of a long-prepared planつまり半導体はある日突然でなく、長く準備された計画の到達点だった即半导体并非某日骤然,而是长久筹划的落点
해설Note解説注解전자 사업(1969)이라는 발판 위에서 도쿄 선언이 나왔다 — 그 결정은 계획가 자신의 것이었다.True to the planner, he had laid the footings over several years before throwing the big bet.計画家らしく、彼は大きな賭けの前に何年もかけて足場を置いていた。一如谋划者,他在投下大注之前,已用数年铺好立足点。
“그의 도약은 충동이 아니라, 십 년을 데운 계획의 폭발이었다.”“His leap was not impulse, but the eruption of a plan warmed for a decade.”「彼の跳躍は衝動でなく、十年温めた計画の爆発だった。」“他的跃升不是冲动,而是酝酿十年之计划的爆发。”

제4부 · 반도체라는 도박Part 4 · The Bet on Chips第4部 · 半導体という賭け第四部 · 半导体这场赌注
도쿄 선언Tokyo Declaration東京宣言东京宣言
“반도체를 하겠다”“We Will Make Semiconductors”「半導体をやる」“我们要做半导体”
1983년 2월 8일8 February 19831983年2月8日1983年2月8日
- 1983년 2월 8일, 일흔셋의 이병철은 도쿄에서 삼성이 DRAM 반도체 사업에 뛰어들겠다고 선언했다On 8 February 1983, the 73-year-old Lee declared from Tokyo that Samsung would enter the DRAM semiconductor business1983年2月8日、73歳の李秉喆は東京でサムスンがDRAM半導体事業に乗り出すと宣言した1983年2月8日,73岁的李秉喆在东京宣布三星将进军DRAM半导体业务
- 이 결정은 훗날 ‘2·8 도쿄 선언’이라 불린다This decision came to be called the “2·8 Tokyo Declaration”この決定は後に「2・8東京宣言」と呼ばれる这一决定后来被称为“2·8东京宣言”
- 평생을 신중하게 살아온 사람이, 인생의 끝자락에서 가장 큰 도박을 건 순간이었다It was the moment a man who had lived cautiously his whole life made his biggest gamble at its very end生涯慎重に生きた人が、人生の終わりに最大の賭けに出た瞬間だった那是一个一生谨慎之人,在生命尽头下最大赌注的一刻
해설Note解説注解왜 무모했는지는 다음 장에서 본다 — 이 선언의 무게는 그 위험을 알아야 온전히 이해된다.Why it was reckless comes next — the weight of this declaration is fully grasped only by knowing the risk.なぜ無謀だったかは次章で見る — この宣言の重みはその危険を知ってこそ理解される。为何鲁莽见于下页 — 唯知其风险,方能完全理解这宣言之重。
“그는 병상에 가까운 나이에, 다음 세대의 미래를 향해 마지막 주사위를 던졌다.”“Near an age of sickbeds, he cast his last die toward the future of the next generation.”「病床に近い年で、彼は次世代の未来へ最後の賽を投げた。」“在近乎病榻之年,他向下一代的未来掷出了最后的骰子。”

제4부 · 반도체라는 도박Part 4 · The Bet on Chips第4部 · 半導体という賭け第四部 · 半导体这场赌注
무모함The Recklessness無謀さ鲁莽
모두가 무모하다고 했다Everyone Called It Reckless誰もが無謀と言った人人都说鲁莽
십 년의 기술 격차A decade-wide gap十年の技術格差十年的技术差距
- 선진국과의 기술 격차는 십 년에 가까웠고, 필요한 자본은 막대했다The technology gap with advanced nations was near a decade, and the capital required was enormous先進国との技術格差は十年近く、必要な資本は莫大だった与先进国的技术差距近十年,所需资本巨大
- 메모리 반도체는 가격이 폭등·폭락을 거듭하는 잔인한 시장이었다Memory chips were a brutal market of prices soaring and crashing over and overメモリ半導体は価格が高騰と暴落を繰り返す残酷な市場だった存储芯片是价格反复暴涨暴跌的残酷市场
- 게다가 일본(NEC·히타치·도시바)과 미국(인텔·TI·마이크론)이 이미 시장을 장악하고 있었다And Japanese (NEC, Hitachi, Toshiba) and US (Intel, TI, Micron) firms already dominated the marketしかも日本(NEC・日立・東芝)と米国(インテル・TI・マイクロン)が既に市場を握っていた加之日本(NEC·日立·东芝)与美国(英特尔·TI·美光)已主宰市场
해설Note解説注解이 위험을 알면, 결과가 성공이었다는 이유만으로 결정을 미화하지 않게 된다 — 도박은 도박이었다.Knowing the risk keeps us from glorifying the decision merely because it succeeded — a gamble was a gamble.この危険を知れば、結果が成功だったという理由だけで決定を美化しなくなる — 賭けは賭けだった。知此风险,便不会仅因结果成功而美化这一决定 — 赌就是赌。
“모두가 질 것이라 말한 판에, 그는 삼성의 미래 전부를 걸었다.”“On a game everyone said he would lose, he staked all of Samsung’s future.”「誰もが負けると言った盤に、彼はサムスンの未来全部を賭けた。」“在人人预言必败的一局,他押上了三星的全部未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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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칩The First Chip初のチップ第一枚芯片
놀랍도록 빠른 첫 칩, 그러나A Stunningly Fast First Chip, but…驚くほど速い初チップ、しかし惊人迅速的第一枚芯片,然而
1983년 말, 64K DRAMLate 1983, the 64K DRAM1983年末、64K DRAM1983年末,64K DRAM
- 선언 몇 달 만인 1983년 말, 삼성은 첫 64K DRAM 개발에 성공했다 — 믿기 힘든 속도였다By late 1983, just months after the declaration, Samsung developed its first 64K DRAM — an incredible pace宣言から数か月の1983年末、サムスンは初の64K DRAM開発に成功した — 信じ難い速さだった宣言仅数月后的1983年末,三星成功开发首枚64K DRAM — 速度惊人
- 다만 이는 무에서 창조한 것이 아니었다 — 기술을 라이선스로 들여오고, 재미 한국인 기술자를 대거 영입했다But it was not created from nothing — technology was licensed in, and Korean-American engineers were hired in forceただしこれは無から創造したのでない — 技術をライセンスで入れ、在米韓国人技術者を多数迎えた但这并非无中生有 — 技术是授权引进的,并大量招募旅美韩裔工程师
- ‘세계 세 번째’ 같은 표현은 홍보의 결이 짙다 — 성취는 실재하되, 정확히 말한다Phrases like “third in the world” are heavily promotional — the achievement is real, but we state it precisely「世界三番目」のような表現は宣伝の色が濃い — 成果は実在するが、正確に述べる“世界第三”之类的说法宣传味浓 — 成就属实,但须准确表述
해설Note解説注解속도의 신화를 정직하게 풀면, ‘무에서의 창조’가 아니라 ‘영리한 추격’이었다 — 그것도 대단한 성취다.Unpacked honestly, the speed myth was not “creation from nothing” but a clever catch-up — itself a great achievement.速度の神話を正直に解けば、「無からの創造」でなく「賢い追撃」だった — それも大した成果だ。诚实拆解速度神话,那不是“无中生有”,而是“聪明的追赶”— 这本身已是了不起的成就。
“기적처럼 보인 속도의 뒤에는, 산 기술과 영입한 사람들이 있었다.”“Behind the miracle-seeming speed were bought technology and recruited people.”「奇跡のような速さの裏には、買った技術と迎えた人々がいた。」“看似奇迹的速度背后,是买来的技术与招来的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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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앗과 수확Seed & Harvest種と収穫种子与收获
그는 수확을 보지 못했다He Did Not Live to See the Harvest彼は収穫を見なかった他未能见到收获
씨앗을 뿌린 사람The one who sowed種を蒔いた人播下种子的人
- 비전은 이병철의 것이었지만, 진정한 결실은 그의 후계자 대에 왔다The vision was Lee’s, but the true fruit came in his successor’s timeビジョンは李秉喆のものだったが、真の結実は後継者の代に来た远见是李秉喆的,但真正的果实来自其继承者一代
- 삼성이 세계 1위 DRAM 기업이 된 것은 1992년, 그의 사후 아들 이건희 대에 이르러서였다Samsung became the world’s No. 1 DRAM maker in 1992, after his death, under his son Lee Kun-heeサムスンが世界一のDRAM企業になったのは1992年、彼の死後、息子の李健熙の代だった三星成为世界第一的DRAM企业是在1992年,其身后、由其子李健熙一代实现
- 그러니 도쿄 선언은 수확이 아니라 씨앗으로 기억해야 한다So the Tokyo Declaration should be remembered as a seed, not a harvestだから東京宣言は収穫でなく種として記憶すべきだ故东京宣言应被记为种子,而非收获
해설Note解説注解성공의 공을 그에게만 몰아주지 않는다 — 결정은 그의 것이되, 실행과 승리는 후대의 것이다. 이건희는 별도 데크에서 다룬다.We don’t credit the triumph to him alone — the decision was his, but the execution and victory were later hands’. Lee Kun-hee is covered in a separate deck.成功の功を彼だけに帰さない — 決定は彼のものだが、実行と勝利は後代のものだ。李健熙は別デッキで扱う。我们不将胜利之功全归于他 — 决定是他的,执行与胜利属后人。李健熙另有专辑。
“그는 자기가 결코 보지 못할 나무를 위해, 씨앗을 심었다.”“He planted a seed for a tree he would never see.”「彼は自分が決して見ぬ木のために、種を植えた。」“他为一棵自己永远看不到的树,种下了种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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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재제일Talent First人材第一人才第一
“사람이 먼저다”“People Come First”「人が先だ」“人先于一切”
도박을 실행으로 바꾼 것What turned the gamble into execution賭けを実行に変えたもの把赌注化为执行的力量
- 그는 “인재제일” — 사람이 먼저 — 을 평생의 신조로 삼아, 인생의 상당 부분을 사람을 뽑고 기르는 데 썼다고 말했다He made “talent first” his lifelong credo, saying he spent much of his life recruiting and cultivating people彼は「人材第一」を生涯の信条とし、人生の多くを人を選び育てることに費やしたと語った他以“人才第一”为终生信条,自称将大半生用于选人与育人
- 무모해 보인 반도체 도박을 현실로 만든 것은, 결국 그가 모으고 키운 기술자들이었다What turned the reckless-seeming chip bet into reality was, in the end, the engineers he gathered and grew無謀に見えた半導体の賭けを現実にしたのは、結局彼が集め育てた技術者だった把看似鲁莽的芯片赌注化为现实的,终究是他所聚集与培养的工程师
- 계획가의 진짜 무기는 자본이 아니라, 잘 짜인 사람과 조직이었다The planner’s real weapon was not capital, but well-organized people and structure計画家の本当の武器は資本でなく、よく組まれた人と組織だった谋划者真正的武器不是资本,而是精心组织的人与结构
해설Note解説注解‘인재제일’은 진심 어린 원칙이자, 개발기 기업의 자기 정당화 수사이기도 하다 — 성과와 함께 그 이면(무노조 등)도 기억한다.“Talent first” was both a sincere principle and a developmental-era firm’s self-justifying rhetoric — we remember the results and the flip side (like the no-union stance).「人材第一」は誠実な原則であり、開発期企業の自己正当化の修辞でもある — 成果と共にその裏面(無労組など)も記憶する。“人才第一”既是真诚的原则,也是开发期企业自我正当化的修辞 — 我们既记成果,也记其反面(如无工会)。
“그는 기업을 세운 것이 아니라, 기업을 세울 사람들을 세웠다.”“He did not build an enterprise; he built the people who would build it.”「彼は企業を建てたのでなく、企業を建てる人を育てた。」“他建的不是企业,而是能建起企业的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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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집가The Collector収集家收藏家
호암, 아름다움을 모은 사람Ho-Am, a Gatherer of Beauty湖巌、美を集めた人湖岩,聚美之人
호암미술관The Ho-Am Art Museum湖巌美術館湖岩美术馆
- ‘호암’이라는 아호로 불린 그는, 평생 우리 옛 미술품을 정성껏 수집했다Known by the art-name “Ho-Am,” he devotedly collected old Korean art throughout his life「湖巌」という雅号で呼ばれた彼は、生涯にわたり韓国の古美術を丹念に集めた以雅号“湖岩”著称的他,一生精心收藏韩国古代艺术品
- 1982년 호암미술관을 열어, 국보와 보물을 포함한 천여 점의 소장품을 세상에 내놓았다In 1982 he opened the Ho-Am Art Museum, sharing over a thousand works including National Treasures1982年に湖巌美術館を開き、国宝や宝物を含む千点余りの所蔵品を世に出した1982年他创办湖岩美术馆,公开了包含国宝与宝物在内的千余件藏品
- 냉철한 계획가의 다른 얼굴에는, 아름다움을 알아보고 지키려는 심미가가 있었다The other face of the cold planner was an aesthete who recognized and preserved beauty冷徹な計画家のもう一つの顔には、美を見分け守ろうとする審美家がいた冷峻谋划者的另一面,是识美护美的鉴赏家
해설Note解説注解그의 미술관은 ‘호암’이다 — 오늘날의 리움미술관(2004)은 아들 이건희 대의 별개 기관이니 혼동하지 않는다.His museum is the “Ho-Am” — today’s Leeum (2004) is a separate institution of his son Lee Kun-hee’s era; do not conflate them.彼の美術館は「湖巌」だ — 今日のリウム美術館(2004)は息子李健熙の代の別機関なので混同しない。他的美术馆是“湖岩”— 今日的Leeum美术馆(2004)是其子李健熙一代的另一机构,勿混淆。
“숫자를 다루던 손이, 옛 도자기의 곡선도 어루만졌다.”“The hand that worked with numbers also traced the curve of an old porcelain.”「数字を扱った手が、古い陶磁の曲線も撫でた。」“运算数字的手,也抚过古瓷的曲线。”

에필로그 · 계획가의 역설Epilogue · The Strategist’s Paradoxエピローグ · 戦略家の逆説尾声 · 战略家的悖论
한눈에 보는 이병철Lee Byung-chul at a Glanceひと目でわかる李秉喆一览李秉喆
여섯 개의 좌표Six coordinates六つの座標六个坐标
1
태생Born生出身
1910191019101910
유복한 지주가의 아들 — 가난한 자수성가가 아니다Son of a wealthy landlord — not a self-made-from-poverty tale裕福な地主の家の息子 — 貧しい叩き上げではない富裕地主之子 — 并非白手起家
2
삼성Samsungサムスン三星
1938193819381938
대구의 작은 무역상 ‘삼성상회’에서 시작Beginning at a small Daegu trading shop, “Samsung Sanghoe”大邱の小さな貿易商「三星商会」から始于大邱的小贸易行“三星商会”
3
제조Manufacturing製造制造
SUGAR·WOOLSUGAR·WOOLSUGAR·WOOLSUGAR·WOOL
설탕과 모직으로 산업의 기틀을 놓다Laying an industrial base with sugar and wool砂糖と羊毛で産業の基礎を築く以糖与羊毛奠定工业基础
4
오점The Stain汚点污点
1966196619661966
사카린 밀수 사건 — 정직하게 마주하는 얼룩The saccharin-smuggling scandal — a stain met honestlyサッカリン密輸事件 — 正直に向き合う汚点糖精走私案 — 诚实面对的污点
5
도박The Bet賭け赌注
1983198319831983
도쿄 선언, 일흔셋의 반도체 승부수The Tokyo Declaration — a semiconductor bet at 73東京宣言、73歳の半導体勝負手东京宣言,73岁的半导体赌注
6
정신The Credo信条信条
TALENT FIRSTTALENT FIRSTTALENT FIRSTTALENT FIRST
인재제일 — 사람이 먼저라는 계획가의 한 수“Talent first” — the planner’s core move人材第一 — 人が先という計画家の一手人才第一 — 谋划者“以人为先”的一着
“그는 모든 것을 계획했고, 끝내 자기가 못 볼 한 수를 두었다.”“He planned everything, and made, at last, the one move he would never see.”「彼は全てを計画し、ついに自ら見ぬ一手を打った。」“他谋划了一切,终究落下一着自己看不到的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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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과 승계Death & Succession死と承継离世与传承
셋째 아들에게 넘긴 제국An Empire Passed to a Third Son三男に渡した帝国交予三子的帝国
1987년19871987年1987年
- 이병철은 1987년 11월, 폐암으로 세상을 떠났다Lee Byung-chul died of lung cancer in November 1987李秉喆は1987年11月、肺がんで世を去った李秉喆于1987年11月因肺癌离世
- 삼성의 지휘봉은 장남·차남을 건너뛰고 셋째 아들 이건희에게 넘어갔다 — 논쟁을 부른 승계였다Control of Samsung passed over the elder and second sons to the third son, Lee Kun-hee — a contested successionサムスンの指揮権は長男・次男を飛ばし三男の李健熙に渡った — 論争を呼んだ承継だった三星的指挥棒越过长子·次子,交予三子李健熙 — 是引发争议的传承
- 앞선 아들들은 1966년 사건의 여파로 이미 후계 구도에서 멀어져 있었다The elder sons had already fallen away from the succession, in the fallout of the 1966 affair先の息子たちは1966年事件の余波で既に後継から遠ざかっていた两位兄长早已在1966年事件的余波中远离了继承格局
해설Note解説注解삼남 승계의 씨앗은 훗날 가문 내 상속 분쟁으로도 이어진다. 이건희의 경영은 별도 데크에서 다룬다.The seeds of the third-son succession later grew into inheritance disputes within the family. Lee Kun-hee’s leadership is covered in a separate deck.三男承継の種は後に一族内の相続争いにも続く。李健熙の経営は別デッキで扱う。三子承继的种子,日后也延伸为家族内的继承之争。李健熙的经营另有专辑。
“가장 치밀한 계획가의 마지막 계획은, 자기 다음을 정하는 일이었다.”“The most meticulous planner’s final plan was to decide who would come after him.”「最も緻密な計画家の最後の計画は、自分の次を定めることだった。」“最缜密谋划者的最后一计,是决定谁来接替自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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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철을 어떻게 기억할까How to Remember Lee Byung-chul李秉喆をどう記憶するか该如何铭记李秉喆
안목과 그늘 사이에서Between vision and shadow眼力と影の間で在眼光与阴影之间
- 안목: 반도체라는 나라의 미래를, 남들보다 십 년 먼저 내다본 전략적 상상력은 실재했다The vision: the strategic imagination that saw semiconductors as the nation’s future a decade early was real眼力:半導体という国の未来を、他より十年早く見通した戦略的想像力は実在した眼光:比他人早十年看到半导体是国家未来的战略想象力,真实存在
- 출발: 그러나 그는 가난이 아니라 유복함에서, 특혜와 국가의 뒷받침 위에서 출발했다The start: yet he began not from poverty but from plenty, on privilege and state backing出発:だが彼は貧しさでなく豊かさから、特恵と国家の支えの上から出発した起点:然而他起步于富足而非贫穷,立于特惠与国家支持之上
- 그늘: 1966년의 밀수 사건과 수십 년의 무노조 경영, 재벌의 집중된 힘도 그의 유산의 일부다The shadow: the 1966 smuggling scandal, decades of no-union management, and the chaebol’s concentrated power are also part of his legacy影:1966年の密輸事件と数十年の無労組経営、財閥の集中した力も彼の遺産の一部だ阴影:1966年的走私案、数十年的无工会经营,与财阀集中的权力,也是他遗产的一部分
“위대한 안목과 지워지지 않는 그늘 — 한 사람 안에 둘 다 있었다.”“Great vision and an indelible shadow — both lived in one man.”「偉大な眼力と消えぬ影 — 一人の中に両方があった。」“伟大的眼光与抹不去的阴影 — 二者同在一人身上。”

계획가의 역설The Strategist’s Paradox戦略家の逆説战略家的悖论
이병철 · Lee Byung-chul · 1910–1987 · Thank YouLee Byung-chul · 1910–1987 · Thank You李秉喆 · 1910–1987 · Thank You李秉喆 · 1910–1987 · 谢谢观看
- 평생을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던” 사람이, 마지막에 가장 무모해 보이는 도박을 걸었다A man who all his life “tested even a stone bridge before crossing” made, at the end, the most reckless-seeming bet生涯「石橋も叩いて渡った」人が、最後に最も無謀に見える賭けをした一个一生“石桥也要敲过再走”的人,最后押下了看来最鲁莽的一注
- 그리고 그 도박의 결실은, 자기 눈으로 볼 수 없는 미래에 놓여 있었다And the fruit of that bet lay in a future his own eyes could not seeそしてその賭けの結実は、自らの目では見られぬ未来にあった而那赌注的果实,落在他自己双眼看不到的未来
- 그를 기리되 미화하지 않는 것 — 그것이 이 계획가를 정직하게 이어받는 길이다To honor him without idealizing him — that is how we honestly inherit this planner彼を称えつつ美化しないこと — それがこの計画家を正直に継ぐ道だ敬重他而不美化他 — 这才是诚实承继这位谋划者之道
“가장 신중한 사람이 남긴 가장 큰 유산은, 결국 하나의 대담한 결단이었다.”“The greatest legacy of the most cautious man was, in the end, a single bold decision.”「最も慎重な人が遺した最大の遺産は、結局一つの大胆な決断だった。」“最谨慎之人留下的最大遗产,终究是一个大胆的决断。”